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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받은 봄이다

모과 2007. 4. 15. 00:03

대학의 캠퍼스는 봄의 향연이 한창이다.

 

벚꽃은 이미 한바탕 축제를 끝내고 잠시 쉬고 곧 푸른 잎새를 내 세울 것이다.

 

개나리와 산수유도 수줍은 진달래와함께 살포시 피고 지고아직 지지 못한 연분홍 진달래는  같은 분홍계통인 "꽃잔디'와 소근 소근 복화술로 대화를 하고있다.

 

한살박이 아기 손톱만큼 수줍게 잎을 내밀고 눈치를 보던 나무 잎새는 어느새 아기 엄지 손가락 만한 잎새로 변해 있다.

 

일을 마치고 어둑 어둑한 교정을 나오는 데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돌아 가는 젊은 엄마가

가로등에 비친 그 나무 잎새를 보고 탄성을 지른다.

"어머! 벚꽃이 이렇게 펴 있네요."하며 남편을 바라 본다.

 

가로등에 비친 여린 잎새는 마치 벚꽃 무리 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호호호. 벚꽃 같지요. 자세히 보세요. 어린 잎새예요.' 내가 답하니

:어머! 그러네요. 꼭 벚꽃같이 보여요."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미소를 주고 받았다.

 

"벚꽃은 저 위에 농대앞에 한창이라네요."

 

전국의 유명한 국 사립 대학을 순회 중인 나는 대학 캠퍼스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공원임을 알게 되었다.

 

사철 나무로는 "소나무"가 많고, 교문 양옆으로 100m 가량 수십년 된 벚꽃을 심은 학교, 연산홍을 심어 놓은 학교...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 목련, 배꽃, 꽃잔디,  일자의 긴 통학로위에 바깥쪽은 오래된 푸른잎의 나무를 안으로는 심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여린 나무들의 행렬들....

 

양쪽에 빠지지 않고 잔디가 깔려 있고 그 사이 사이에 밤색의 벤치가 아기 자기 놓여 있다.

후정문 바로 앞에는 양쪽으로 정취 있는 벤치가 양편으로 늘어져 있고 방과후에 학생들은 한가로히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방대학에서 볼 수 있는 "자전거"통학생, 캠퍼스내에서만 타는 오토바이....

 

그 사이 사이로 쏜살같이 오가는 음식 배달 오토바이....

 

지금 일하고 있는 남도의 명문 00대학에는 후정문 앞으로 대학로가 번창하고..지방대는 정문보다 후정문이 대부분 발달되었고 대학로도 그곳으로 이어져 있다.

 

아침에 츨근을 하면 늘 까치가 정겹게 노래를 지저귀는 데 사람을 보아도 피하지 않는다.

일주일을 무심히 듣고 보았는데 어제 먼 산을 보며 새소리를 따라 눈을 돌리니

 

아!

모든 나무가 작게 크게 잎을 내밀고 있는데 행사장 위길에 죽 서있는 앙상한 나무의 질서있는 행렬들..

맨위에 "까치집"이 무척 컸고 까치가 그 속을 드나 들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에게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프라타나스"라고 알려 주었다.

 

교정의 모든 나무가 새싹을 틔우고 있는데 "프라타나스"나무만이 아직 앙상한 겨울이었다.

 

늦게 싹을 내고 한여름에 넓은 잎새로 프르름을 선사하고 시원한 공기를 내뿜고, 풍성한 나무 속에는 커다란 "까치집'을 감싸주고 있는 넉넉한 나무...프라타나스.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질서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

 

50년을 훌쩍 넘게 살았어도 처음 깨달은 사소한 이 현상의 발견에 놀라울 뿐이다.

 

자연은 이렇게 자기 차레를 묵묵히 기다려 책임을 다하고 있는데 인간은 늘 자연을 역행하여 제철에 나지 않는 과일을 먹겠다고 노력을 하고 무슨 일이든 앞서지 못해서 안달을 떨며 산다.

 

좀 늦은 들 불행한 걸까?

한 두번 실패를 했다고 인생 전부의 실패일까?

 

프라타나스의 때를 기다림의 미학을 보며 나 또한 "프라타 나스"같은 인생이 되어감을 느끼고 있다.

 

나이 들어 남과는 달리  젊은 대학생들 속에서 책을 이야기 하며 젊게 살고 있다.

     

 그 동안 어리석을 정도의 인내와 책임감으로 견디기 힘든때가 너무 많았지만 그 혹독한 고통을 잘 견뎠기에 이제 좀 마음은 여유로워졌고

가끔은 나의 삶이 대견하여 스스로에게 미소를 보내곤 한다.

 

어제 남편은 부산에서 일부러 내게 온다고 했다.

"왜요? 대전에 가셔야 하지 않아요?"

"당신이 보고 싶어서지."

 

남편의 말이 거부감 없이 들려왔다.

그의 끝없는 가족에 대한 사죄는 성실함과 사랑과 배려로 ..그리고 나의 바쁜 대학 순례가 남편과 나의 벌어졌던 틈을 완전히 밀착시켜 준 것이다.

 

저녁 9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의 대화속에서 나는 분명한 결심을 하였다.

그에 대해 용서하지 못한 나머지 2%를 마져 용서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프라타나스의 기다림의 미학과 넒은 나무잎의 배려와 "까치"를  감싸주고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100%의 용서는 마음속에 하나의 샘물을 마련한 것처럼 청정한 맑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나야 말로 정말 인생의 새로운 "봄날'을 만나고 있다.

 

축복받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