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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부모에게 권유하고 싶은 10가지

모과 2007. 3. 1. 03:23

한 사람을 교육한 결과는 27~30 년후에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아들의 엄마로서 그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성과 노력한 보람으로 행복한 순간도 많았다.

시행착오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가 된적도 있었다.

집안이  갑자기 기울어서 아들들에게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해야 할 때 못해서 미안한 적도 많았다.

 

이제 27,30세인 두 아들을 바른 심성과 성실성과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예의 바른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양육문제로 인하여 "자아 실현"을 못하는 나의 내면과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

그러 던 어느날 깨닫게 된 것은 내가 뛰어나게 똑똑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치기, 어정쩡한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자녀를 잘 키워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아들들을 키웠지만 ,사업 실패로, 내가 몸이 많이 아파서 막내 아들에게는 형에게 한 만큼의 정성을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늘 미안하였다.

 

나의 경험은 한 주부의  체험이니 읽는 분의 형편에 따라서 바꾸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큰애가 4살 부터 고등학교1학년까지 전업 주부였던 나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하면서 생활의 리듬을 큰애의 시간에 맞추었다.

 

 

1. 아이와 함께 30분 동안 아침 산책을 하였다.

 

 

 3월에 입학식을 하고 바로 시작하였다.

아파트 뒷산의 약수터에 데리고 다니며 자연을 관찰 시켰다.

 

앙상했던 가로수와 산의 나무에서 파란 잎새가 나는 것을 보게하고 아스팔트 사이에 올라오는 쑥과 잡초의 잎을 보게 하였다.

 

아이의 입에서 "엄마! 쑥은 쑥쑥 자라서 쑥인 거야?" 하는 물음이 나왔다.

"엄마! 미류 나무 잎이 반짝 반짝 빛나."

나무 잎파리가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변하는 과정을 신기하게 보게 되었다.

 

그 말을 기억 했다가 하교 후에 일기에 쓰게 하였다.

산책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주말 2일만 하여도 좋을 것 같다.

 

 

2. 아침 식사후에 설걷이를 하면서 옆의 식탁에서 아이에게 책을 큰 소리로 읽혔다.

 

 

그당시에는 "바른 생활"이라고 했었다.

교과서를 큰소리로 3번 읽히면 일주일이면 약 20번을 읽게 된다.

일주일에 한 과 정도 진도를 나가니까  나중에는 교과서를 외우게 되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읽기를 시켜도 당황하지 않고 낭낭하고 또박 또박 읽게 된다.

교과서 한과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이었다.

 

 

3.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 오면 바로 준비물을 사러 보냈다.

 

 

그리고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이고 숙제를 하게 하였다.

일기도 숙제 할 때 함께 하게 하였다.

 

모든 공부는 40분을 단위로 시키고 20분은 쉬게 하였다.

공부는 연습이며 꾸준히 하여야 하므로 몰아서 1시간 이상 하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 진다

 

*숙제를 하고 나면 나가서 놀게 하였다.

 

초등학교 1학년때는 아이가 원해서 피아노 학원에만 보냈다.

졸업 할때까지 열심히 다녀서  학원 원장이 전공을 시키고 싶다고 하였다.

아들과 남편과 의논하여 졸업때까지만 다녔다.

 

 

4. 일기는 매일 정성껏 쓰게 하였다.

 

서점에서 "일기 쓰기 지도법"을 사다가  읽고 지도 하였다.

 

먼저 다른 노트에 쓰게 하고 맞춤법과, 문맥이 맞나를 확인하고, 띄어 쓰기를 고쳐 준 후에 원고지 노트에 쓰게 하였다(그때는 충효 노트라고 하였다)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진학 하였을 때 따로 논술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글을 잘썼다.

대학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할때 "자기소개서"를 잘 써서 서류전형에서는 탈락한 적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때 6년간 일기를 모아 둔 사람 중에서 상을 주었는데 우수상을 받았다.

모두 12명뿐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쓴 아이였다.

아들 아이는 6년동안 2일을 빠트렸다.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선생님들이 일일이 날짜를 확인하였었다.

 

 

5. 동화책은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고르게 하였다.

 

 

초등학교 시험은 쉬워서 100점을 많이 받아왔다.

100점을 받을 때마다 상으로  창작 동화책을 사주었다.

사촌형들이 읽은 위인전집, 세계명작 전집, 과학 사진 사전, 곤충, 동물 사전 등을 보고 또 보고 하였다.

 

책을 많이 읽으니 말을 조리 있게 하기 시작 하였다.

 

 

6.글씨 지도는 엄격하게 하였다.

 

저학년 국어 노트는 원고지 모양인데  숙제를 하라고 했더니 삐뚤 빼뚤 글씨가 예쁘지가 않았다.

옆에서 지우개를 들고 지키고 있다가 잘못 쓰면 바로 지우니 원고지 칸에 크게 정성껏 쓰더니 "경필쓰기"상을 받아 왔다.

고등학교때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담임이 학적부를 아들 아이에게 쓰게 하였다.

물론 담임이 쓸 칸은 빼고....

 

 

7. 편식은 엄격히 벌을 주었다.

 

식사 중에 반찬 투정을 한다던가 먹다 남기면 그 아이가 남긴 밥을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 식사 시간에 그것을 주었다.

다른 식구는 따뜻한 밥을 먹고 ...몇 번 그리 하였더니 지금까지 편식과 반찬투정이 없다.

어느 집에 가도 밥을 잘 먹어서 대접을 받고 있다.

 

 

8.아무리 피곤하여도 샤워를 하게 하였고 특히 치아 관리를 중요시 하였다.

 

유치원까지 내가 직접 이를 닦아 주었더니 충치가 하나도 없었다.

두 아이 다 치과에 가면 건치라고 의사에게 칭찬을 듣고 있다.

어릴때의 습관대로 술이 많이 취한 날만 예외이고 매일 깨끗이 샤워를 하고 있다.

 

 

9. 친구의 생일 에 초대받아서 가면 차려진 음식을 마음속으로 사람수 만큼 나누어서 한사람 몫만 먹으라고 가르쳤다.

 

배려도 습관이고 연습이므로 친구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남기는 마음을 키워 주고 싶었다.

 

 

10.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은  할 수 있으면 집에서 한 번 해 보았다.

 

이것은 내가  전직 과학 교사여서 그랬을 것이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4,5학년때 학교 대표로 교육청에서 주체하는  "과학 실험 발표"에 나가서  선발되어 부산시 대회에도 참가했었다.

 

그밖에 운동화는 일주일에 한번씩 꼭 빨아서 깨끗하게 해주었고 바지는 자주 다려 주었다.

 

시댁은 교육자 집안이고 우리 부부도 교사였기 때문에 아파트의 엄마들이 교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기 싫었다.

 

학기초 학부모회의에는 꼭 참석 하였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얼굴도 모른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스승의 날에는 조그만 선물이라도 아이와 의논하였고 함께 사러 갔고 아이에게 들려서 보냈다.

 

학년을 마치고 봄 방학 하는 날에는 꼭 찾아 뵙고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정성이 담긴 선물과 함께....

 

초등학교 6년동안 아들은 모든 선생님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자기를 스승으로 대접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좋아하지 않을 선생님이 어디 있겠는가?

 

중학교에 입학을 한 후부터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는 소리는 별로 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공부의 방법과 요령과 습관을 터득했기때문이다.

 

지금 큰 아들은 졸업 전에 대기업 계열사에 좋은 성적으로 (인사팀이라 본인의 성적을 볼수 있었음)

입사를 하였다가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지난해 10월 말에 퇴사하고 다시 시험을 보고 은행에 입사를 하였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서울의 한 지점에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하였다.

130대1의 경쟁율을 뚫고 ,먼길을 돌아서 자기의 길로 제대로 찾아 간 것 같다.

 

두 아들을 키우며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엄마가 몰라서 아이들이 배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생기면 어쩌나였다.

 

아무리 좋은 문제집이나 학습지라도 아이들에게 싫증을 주어서 공부 자체를 싫어 할 것 같으면 그만 두었다.

 

이제는 두아들 다 군복무도 마치고 작은 아들은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엄마를 마치 여동생 돌보듯이 걱정을 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자라면서 기쁨을 많이 주었는데, 부모는 갑자기 가난해져서, 몸이 많이 아파서, 한때는 잦은 부부싸움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게 마음 아프다.

 

집안이 잘 되려면 부모보다 자식이 나아야 한다는 말을 위안 삼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