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매력있는 경상도 말 몇 가지
경상도로 이사 온지 27년이 되었다.
신혼 여행을 해운대로 오면서 몇년 후에 해운대에 와서 살 것을 알았다면 원래 가려던 제주도로 갔을 것이다.
27년 전 경남 진주로 이사하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천지가 눈으로 쌓여서 하얗게 빛나는 축복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 유명한 촉석루 가까이에서 살았는데 진주 시내는 걸어서 30분이면 중심가를 한바퀴 돌아 올 정도로 작은 인구 20만의 도시였다.
중앙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대화를 하는데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서부 경남에 위치한 진주에는 거제도와 남해, 삼천포, 산청,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경상도 사투리도 경북과 경남이 다르고 경북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은 대도시라서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이 많은 곳이고 진정한 경상도는 서부 경남 같다.
특히 남해사투리는 끝말에 ~쿠데요, ~하고로.를 넣고 고장특유의 유머어가 재미있다.
음식도 푸짐하여서 단체로 소풍을 가면 준비한 음식이 너무 많아서 저녁까지 먹고 싫컷 놀다 오곤 하였다.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귀담아 듣고 있으면 배꼽이 빠질 정도로 유머어가 많이 들어 있다.
진주에 간 며칠은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꼭 외국에 온 것 같았다.
진주의 맛있는 음식은 "진주 비빔밥"인데 소고기 육회를 넣는 게 특이하였다.
경북 사투리는,경주근방에서는 끝말에 ~하니더 를 넣고 집집마다 남편의 문패옆에 "안동댁" "여주댁" "양산댁"이란 여주인의 문패가 나란히 달린게 인상적이었다
경상도의 말씨는 투박하고 화가 난 것도 아닌데 말을 내밷듯이 던지는 것 같다.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말이 없기 때문에 과묵함이 매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경상도 남자가 말이 없다고들 하는데 예외도 많다.
장사를 하면서 나는 여자 보다 더 수다스러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를 여러 번 보았다.
진주에서 2년 살고 부산 해운대로 이사를 왔으니 부산 온지는 25년이 되는 셈이다.
부산의 어린이들은 말의 끝에 ~했대지 하고 붙였다.
우리 아이들이 말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꾸중을하고 보니 온 동네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였다.
예;형님아 공부 했대지.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버릇들이 고쳐지는 것 같다.
내가 27년을 살아 오면서 가장 정겨운 경상도 말은 아지매, 형님아! 보이소, 가입시다,....
아지매: 아줌마의 사투리인데 나보고 "책방 아지매"라고 하면 기분이 좋다.
부산 라디오 방송에서 "자갈치 아지매"라는 프로도 있다.
행님아!: 어린 아이들도 자기 형이나 남의 형이나 꼭 형님아!하고 님자를 붙여서 부른다.
우리 아이들이 시댁에 가서 사촌형들에게 "형님아!'부르니 좋고 존경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야릇하다고 하였다.
보이소: 보이소 . 아지매.:아줌마를 부르는 정겨운 소리다.
무척 정겹고 가깝게 느껴지는 말이다.
가입시다: 손님이 집에 왔다가 돌아 갈때의 인사 말이다.
안녕히 가셔요 와 같은 뜻이다.
짝지: 서울 말로 짝꿍을 말한다.
학교에서 자기의 짝을 말한다. 혹은 부부 간도 말 할 때도 있다.
경상도에 오래 살다 보니 이제 말에 대한 오해는 별로 없다.
솔직하고 화끈하여 뒤끝이 없다고 그 들은 자랑하지만 듣는 사람은 받은 상처로 뒤끝이 남는다.
때로는 솔직함이 다 좋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부산은 겨울이 없이 늦 가을 에서 그냥 봄으로 넘어 가는 것 같다.
날씨가 포근하고 싱싱한 해산물 먹거리가 풍부한 부산.
잠시 머물다 가려던 이 곳에서 나는 인생의 가장 긴 기간을 살았다.
이곳에 익숙해서인지 이제는 서울 말이 사투리 같이 음색이 구별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아직도 이곳이 고향 같지 않은 것은 남편의 귀소 본능이 강해서 그는 한마디의 경상도 사투리도 사용하지 않는 고집센 충청도 샌님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 세번을 예산 시골 마을 집으로 갈때가 제일 행복한 남자.
자기가 태어 나고 시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시할아버지가 태어 나신 집으로 가면
어릴적 초등학교 동창이 남편보다 나이든 모습으로 웃으면서 반겨주는 곳이다.
막내가 졸업을 하면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충청도로 이주하고픈 남편의 꿈이 이루어 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