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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들은 분명히 떨어집니다....... 점쟁이와 싸웠다.

모과 2007. 2. 1. 15:01

지금까지 살아 오다가 앞날이 막막 할 때 3번 점을 보았다.

 

기독교인이라서 점을 믿지 않고 살아 왔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 가셔서 내 생일의 태어  난 시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몇 해전 구정을 지낸 후 아파트안의 상가에 있는 점집이 하도 잘 맞친다고 해서 한 번 갔다.

 

10년이 넘게 남편이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내가 하던 상점도 사양길이라서 하도 갑갑하여서 가 보았다.

 

도사님은 귀가 마치 부처님 귀같이 생겼다.

태어 난 시를 모른다고 하니 그래도 맞칠수가 있다고 장담을 했다.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자가 있지요?'

"................"

내가 기가 막혀서 대답을 하지않자

"왜 대답을 하지 않아요?"

"남자가 없는데요. 남편이 있는데 무슨 남자가 있습니까?'하니까

 

아주 장담한다는 표정으로

"옆에 남자가 있는데 ..지금 남자가 있거나 그 전에 사귀던 남자가 다시 댓쉬를 하던가 할걸요." 하였다.

"제가 하는 일이 아이들 상대고 앞으로도 전에도 남편외는 없을 텐데요." 하였더니

"올 해에 이사를 갈 거요."하였다.

"이사를 할 계획이 없는데요. 작년말에 지금하는 상점을 샀는데요."

"그 건 작년 일이고 앞으러 이사를 갈 운이요. 그때 또 나를 찾을 거요."하였다.

앞으로의 일이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사주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더니.....

"부모덕도 없고 공부도 제대로 못했을  팔자군.."하였다.

"................."

"왜 대답이 없어요?'하고 근엄하게 물었다.

"부모님 덕을 지금까지 보고 있고 매년 쌀을 다섯 가마를 보내주시고 (그때는 그랬다.지금은 먹을 양만큼을 주신다) 남편은 대학원까지 나와서 대학에서 조교수까지 한 사람입니다."

 

"이 사주로 그렇게 많이 공부할 리가 없는데....."

 

이미 돈을 6만원을 주었으니 그냥 나올수 밖에 없었다.

 

그후에 이사를 가지 않았고 내게 남자도 생기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라서 도사님을 길에서 우연히 한번 만났다.

 

"선생님! 제게 이사도 가고 남자도 생긴다더니 하나도 안 맞던데요."하였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가끔 점괴가 맞지 않을 때가 있어요."하였다.

 

 

그후 남편도 적성에 맞는 직장에 재취업을 하고 아들아이도 취업을 하였다.

남편의 사업 실패의 후유증은 오래갔다.

집에 압류가 들어왔고 가전제품에 붉은 딱지가 붙었다.

나는 사업부진으로 상점을 폐점을 하였다.

 

남편회사에서 하는 대학행사에 직원이 부족하여 전국 약 70개 대학에서 봄 가을 에 하는 "대학생을 위한 책할인 행사"에 아르바이트로 7개대학에서 약 2주일씩 일을 했다.

 

대구 영남대학에서 행사를 할 때 아들 아이가 내려 왔었는데 얼굴색 이 새까맣게 죽어 가고 있었다.

 

힘들게, 간절히 원해서 들어간 대기업에서 맡은 업무가 신입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업무였고

아들아이는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로 고민을 많이 한 것 이 얼굴색에 나타났다.

집안 형편을 다 아는 아이는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만을 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가 아들을 폐인 만들 것 같았다.

"회사 그만 두어라. 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마음은 이 취업란에 어쩌나하고 걱정이 앞섰지만 아들 아이의 모습은 남편과 나를 결심하게하였다.

 

아들아이는 후에 다른 회사에 취업을 한 후에야  그때의  심정을 솔직히 말했다.

회사를 다닐때 금요일만 되면  월요일에 회사에 갈 생각 때문에 죽고 싶었다고.

 

아들이 회사를 그만 두고 나는 할인마트에 취업을 하였다.

 

휴무날에 극장에 갔다가 타로점을 보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갑갑한 마음에 한 분에게 가서 아들아이의 사주를 알려주었다.

여자분이었는데 그 분 역시 한자로 무엇인가를 능숙한 솜씨로 쓰더니 말하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아주 좋네요. 사주에 나와있어요. 머리가 좋다고..."

"네. 머리가 좋다 기 보다 노력형이지요."하였다.

사실이었다.

머리는 I Q가 130좀 넘을 뿐이고 노력을 독하게 하는 아이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군요."

거침없이 내밷었다.

"글쎄요. 신입 사원 중에서 자기와 다른 한명만 어학연수도 못 갔다 오고  자기가   제일 어리버리 하다고 주말이면 모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이고 그 아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말인데요."

나는 가끔 솔직한 성격때문에 잘난척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우리 아이는 정말 겸손하고 성실한 아이이다.

 

"장가는 늦게 가야합니다. 지금 사귀는 여자와 결혼을 하면 이혼을 합니다."

아들아이는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다.

자존심이 강하고 10여년을 힘들게 살아 왔기 때문에 일을 우선 하는 아이다.

 

물론 누구나 보고 모범생이라고 말 하는 단정한 모습이기때문에 회사연수원이나 대학 재학때도 따르는 후배는 늘 있었다.

문제는 여자 후배들이 너무 잘 사는 집안의 딸들이라서 연애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다음에 자기가 성공을 해서 4,50대가 되었을 때 명품을 사 입게 할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부터 명품으로 머리 부터 발끝까지 하고 다니는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 아이가 얼마전에 대기업에서 나왔는데 다시 취업이 곧 되겠습니까?'

"절대 안됩니다.'  확신에 찬  얼굴로  말 하였다.

"사주를 철학으로 보시는데 맞추시는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85%입니다."

"그래요 저번에 대기업 시험을 보고 신문에 난 분들에게 전화를 두곳에 했더니 한 분은 분명히 붙는다. 한분은 절대적으로 떨어 진다 했는데 합격을 했거든요."

 

"어머니 사주를 보면 알 수가 있지요."

나는 태어 난 시를 모른다고 했더니 그래도 맞힌다고 장담을 하였다.

 

"본처예요?" 대뜸 그렇게 물었다.

"그럼요."

"이 사주로는 이혼을 할 사주인데 힘들게 사셨군요. 옆에 남자가 있어요."

"무슨 남자가 있다고 그러셔요. 저번에도 그런 분이 있는데요. 남자를 일로 해석 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네. 일일 수도 있어요."

 

"실망이 큽니다. 우리 아이는 참 성실한데 기도도 열심히 하는아이예요."

"교회 다니 십니까?"

"네 . 하도 답답해서 한 번 물어 본 것인데 상처 받았어요."

"기도는 운명을 이깁니다.교회에 다니시는 분이 왜 점을 봅니까?" 하는 것이다.

 

큰 아이는 시아버님이나 우리 부부의 염려하던 과는 달리 세곳에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대기업 한 곳과 은행 한 곳에 최종 합격하였다.

대기업에서는 우체국 꽃배달과 사장님의 축전을 보냈고 택배 아저씨는 꽃과 합격증을 들고 있는 나를 디카로 찍어 갔다.

 

돋다리도 두두리고 건너는 성격인 아들은 은행이 적성에 맞다는 소리를 많이들었다.

12월 19일 아들의 생일에 합격 통보를 보낸 대기업인 은행의 연수원에서 지금 교육을 받고 있다.

 

나는 그 타로점을 보는 분에게 찾아갔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확신있게 떨어진다고 말한 우리 아들이 두 곳에 합격을 했어요. 어떤 분은 불운이든지 행운이든지 사주대로 내게 다가 오지만 자기가 극복을 하거나 행운도 자기가 부족하여서 놓치는 수가 있다고 말해 주었어요."

 

그 분은 돈 통을 열며...

"그때 얼마를 주었지요."하며 돈 2만원을 돌려 주려고 하였다.

 

"이보세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왜 앉아서 입으로 죄를 짓고 살아요.

그때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아셔요."

 

"찾아 오실줄 알았습니다. 제가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여보셔요.당신 기도로 내 아들이 회사에 붙었단 말이예요."

옆에 앉아 있던 분이 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선생님들 무당이예요. 철학으로 보는 것이지요.미안하다면 되잖아요."

그제서야 그 여자는 미안하다고 했다.

 

"젊은 사람에게 좋게 말해 주면 안됩니까? 나도 지금  마트에서 힘들게 일하고 오는 중이예요. 입으로 죄짓지 말고 몸으로 일해서 돈을 버셔요."

 

아들아이에게 이야기 했더니 웃으며 말했다.

"엄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런 것을 믿는 엄마가 잘못이지. 다음 부터는 보지마셔요.'

"그러게 말이다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겠니?'

 

인생은 자기가 개척해 가는 것이다.

지남 10여년을 비포장길을 달려 온 것은 잘 맞추었다.

 

그러나 누구나 주어진 인생이란 숙제를 풀어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숙제가 쉽거나 어려운 것은 그것은 운명일 것이다.

 

나의 숙제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보통 수준인데 내가 좀 엄살을 떤 것 같다.

 

나를 깨우쳐준 이웃들 ........   같은 상가에서 하루 종일 세탁일을 하는 성실한 부부,

 

 남편과 같이 쇠붙이를 만드는 용광로에서 일하는 책방 단골 손님,

 

아침에는 우유 배달을 낮에는 세탁소의 옷들을 수거하러 아파트를 돌고,저녁에는 신문 배달을 하는 젊은 엄마,..

 

허리가 아픈 데도 옥상에  쌓아 놓은 지나간 무협지 박스를 환하게 웃으며 번쩍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폐지를 줍는 젊은 엄마......

 

내가 책방을 하며 세상의 다른 방향을 볼 수있었고 개미같이 일하는 그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는 너무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앞으로도 미래는 나의 노력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절망이란 말은 나의 사전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