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싹이 돋았는데....
이사를 하면서 나온 물건 중에 아! 내가 이런 것 들도 했었나?
감탄이 나오는 물건이 몇 개 있었다.
20년전 큰 아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일때 방학 숙제로 만들었던 "4대를 나타내는 족보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출품했더니 최우수상을 받아서 교실 뒤에 학기가 마칠때까지 전시되었었다.
그 액자가 하나이고,그때나는 36살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액자.
그 당시에 내가 무척 감동받았던 성경귀절 이었나보다.
누군가에게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십자가앞에서 한복입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액자였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말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 두지 말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이사야 43,18-19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다.
36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으며 나의 얼굴에서는 빛이나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 후 불과 몇년후 부터 질풍노도,우여곡절, 파란만장, 설상 가상..........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암흑기를 맞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런 것들을 온몸을 움크리고 두 아이들을 힘껏 껴안고 견뎠더니 이제 내 인생의 기차는 긴 터널의 끝이 저기 훤하게 보이는 시점을 통과하는 것 같다.
이사후에 집을 다녀간 큰애가 전화로 물었다.
"엄마! 이사를 하니 좋아?"
"그래 좋아. 접혔던 몸이 쫙하고 펴진 것 같아. 뒷산의 단풍도 곱고, 앞의 낙동강도 좋고 좀 넓어진 집도 좋아."
"엄마! 그 집에 이사하고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 거야."
"엄마는 마음이 편하고 조그만 집이 좋아. 넓은 집은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아."
맞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늘 걱정을 껴안고 산 인생이 후회된다.
늘 사랑으로 사람을 통해서 돌봐주었는데... 시아버님을 통해서, 자식을 통해서, 형제를 통해서,친구를 통해서,자연을 통해서, 그리고 한때는 내삶의 고통의 원인이었던 남편을 돌아 오게해서....
이제 남편을 보면 술상을 차려주고 싶다.
고단한 그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그가 나의 곁에서 외로울까 걱정도 된다.
심지어 내 곁에서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던 때도 있었으니 인생의 아이러니는 끝이 없다.
인생은 늘 새로운 시작이며, 나를 사랑해 가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