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놈한테 세게 한방 얻어 맞았다
두 달 동안의 긴 출장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짐을 싸서 새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 동안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던 필요 없는 물건들이 50 리터 봉투로 10개 가량이나 나왔다.
30년전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입었던 상복,17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입었던 상복 까지 나왔다
.
막내의 고등학교 동창이 둘이 와서 이삿짐 센타의 아저씨들을 도와서 쉽게 이사를 하였다.
장사를 오래 하여서 질서 없이 살다가 잘 정돈 된 아파트에서 제 시간에 저녁을 먹으니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기도 하였다.
삽겹살에 소주를 먹으며(나는 밖에서는 술을 먹지 않는다.너무 얼굴이 빨게 져서 보기가 좋지 않아서)
남편과 막내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서울에 있는 큰애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두 달간의 대학 행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아들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대학생을 위한 책 할인 행사"를 하였는데 내가 행사 진행을 하였었다.
시댁은 금산가는 쪽으로 대전의 끝에 있고 아들의 학교는 시댁에서 정 반대인 유성에 있으므로
막내는 학교앞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아버님은 시댁에서 직행버스를 타면 1시간가량 걸린다고 하시며 집에서 다니기를 바라셨다.
며느리가 모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 안스러워서 하시는 말씀인줄 알지만 하루 종일 서서 장사를 하고 많다면 많다고 생각 되는 공금을 가지고 직행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위험 한 일이었다
첫날에 시댁에서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니 요금이 12,000원이나 나왔다.
무엇보다도 불편한 것은 어머니께서 무릎의 관절에 인조 관절을 넣는 수술을 하셔서 큰 방에 침대를 넣어서 그 곳에서 주무시므로 내가 안방에서 잠을 자야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에 컴퓨터가 있는데 회사에 일일 매출 보고를 커뮤니티에 올리고 나면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곤 하기 때문에 부모님도 불편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수술 결과가 좋아서 건강은 오히려 좋아지시고 혈색도 좋아지셨다.
하지만 골다공증 휴유증으로 키가 10cm도 더 줄어 드신 칠순이 넘은 어머니께서 해 주시는 밥을 먹기가 마음으로 너무 어려웠다.
부모님은 새벽 5시면 일어나시고 6시30분이면 아침식사를 하시는 습관이 있어서 시댁에 가면 나는 늘 어머니가 아침 밥을 하시고 된장찌게를 끓여 놓으신후에 된장 뚝배기를 숟가락으로 "탁 탁 탁" 두두리시며 일어 나라는 신호를 보내셔야 겨우 일어 나곤 하였다.
그때부터 내가 상을 차리고 식사를 마치면 7시가 조금 넘었다.
더 불편한 점은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삼순이"를 밤이면 풀어 놓아서 밖에 있는 화장실에도 마음 놓고 갈 수도 없는 점이다. 나는 개를 무서워 하는 편이며 좋아 할 수는 더 없는 사람이다.
밥을 먹으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며 툴툴거리듯이 말하였다.
한 주일하고 쉬는 토,일요일에 내가 어머니에게 가서 자지 않았다고 아버님이 남편에게 말씀하셨다기에
내가 화를 버럭 내며 큰 소리로
"아버님은 너무 하셔요. 며느리가 다리가 퉁퉁 부어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픈데...아니,어머니가 유성에 오셔서 함께 목욕도 하고 점심도 좀 사주시고 가면 안되나?"
"참! 당신도 그런 걸 어머니에게 바라면 걱정 할 일이 없지. 아버지는 당신이 걱정이 되어서 그러시지."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교에 세번은 올라가 봐야 하는데 어떻게 집에 가서 자요. 안방에서 자지 않으면 몰라도..."
텐트를 치고 장사를 하기때문에 도난을 당하려면 쉬운 일이었으나 어느 대학에서도 그런일은 없었다. 그래도 책임이 있으므로 쉬는 날에도 꼭 두 세번 학교에 가 보곤 하였다.
그 전 주에 어머니 생신을 큰 형님 집에서 미리 당겨서 했는데 진짜 생신은 수요일이었다
다른 해에는 생신 당일에 꼭 전화를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행사중에 본사에서 한 트럭 분의 책이 내려왔고 설상 가상으로 비가 갑자기 와서 책을 보호하느라고 우왕 좌왕 하느라고 깜박 잊었었다.
일요일에 전화를 드리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서 들려왔다.
뭐라고는 하시지 않으셨지만 느낌으로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대로 서운했고 심통도 조금 났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막내가 갑자기 나를 이상하다는듯이 보며
"엄마! 엄마는 할머니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좋아는 하지. 하지만 지금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거지.
"
"엄마는 사실을 말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듣기에는 할머니 흉보는 것 같은데,그러면서 뭘 목욕을 같이 가고 할머니하고 극장을 같이 가고 그래. 뒤에서는 흉보면서."
"야! 임마. 그건 다른 이야기지. 할머니가 극장을 가신지 3`40년이 되었다고 하셔서 같이 "타짜'를 보았더니 재미 없다고 하시고 새로 개업한 한밭 식당에서 설렁탕을 시켜드렸더니 파를 다 건져 내시며 거의 안드시니까 다음부터는 같이 가고 싶지가 않지."
"엄마는 할머니가 보시기에는 재미 없으니까 재미없다고 하셨겠지. 큰 엄마들이 보기에 엄마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어"
"뭐가 이상한데?"
"한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목욕을 같이 가네, 극장을 같이 가네 하고 알랑방귀 뀌는 것으로 밖에 더 보겠어?"
"기가 막혀서. 임마! 그건 엄마가 생활이 힘이 들고 장사를 쉴 수가 없으니까 그 동안 아빠만 할머니집에 간 것 아니야. 그래서 큰 엄마한테 그 동안 잘 못 했으니까 앞으로 최선으로 잘하도록 할테니 이해 해 달라고 미리 말했잖아."
"엄마! 엄마,아빠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인데 지금 엄마는 부모님 흉을 보고 있잖아. 형하고 나한테 엄마 아빠는 부모님인데 우리는 다른데 가서 부모님 흉 안본다구."
내가 빨리 깨닫고 말을 마쳤으면 아들 놈한테 더이상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약간 흥분상태이었으므로 분위기 파악이 잘 되지 않아서 계속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피곤해도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잤잖아.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하신 것 아니야."
남편이 딱하다는 듯 처다보며 "뭐가 너무해. 어머니,아버지가 더이상 어떻게 배려를해."
행사를 마치니 긴장도 풀어지고 행사하는 동안을 계속 서서 있고 점심시간과 마감을 한 후에야 앉을 수 있어서 다리는 마치 고무 장갑을 빵빵하게 불어 놓은 것 같이 부어있었다.
발이 부어서 걷기도, 앉기도 불편하였다.
마음은 유성에서 목욕을 하고 푹 자고 싶었지만 도리상 그럴 수가 없어서 시댁으로 갔었다.
아버님은 며느리 몸이 피곤하다고 심야 전기 보일러를 크게 틀어 주셨다.
너무 피곤하고 방도 따뜻하고 하여서 정신 없이 자고 있는데 방 밖에서 조용 조용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혀. 애들 자는데.."
"알았어요. 아이구 보일러를 얼마나 크게 틀어 놓았길래 뜨거워서 발을 딛을 수가 없시유."
보일러 스위치는 안방에 있고 우리는 자느라고 중간에 보일러 스위치를 낮추지 못했다.
"아 글씨. 조용히 하래니까. 애들깬다구."
"알았시유 벌써 7시 30분이유."
얼른 일어나서 부엌에 가보니 어머니가 된장찌게에 호박만을 넣고 끓여 놓고 밥은 전기 밥통에 조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누가 오든 당신이 된장이 최고라고 하시며 그것도 호박만을 고집하시고 달랑 된장찌게 하나와 이것 저것 김치만을 놓인 밥상을 주로 주신다.
"아이구, 밥이 얼매 없네. 어제 막내가 와서 너무 많이 먹고 갔는가벼."하시며 누룽지 말린 것을 갔다가 끓여서 아침밥을 먹었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모두 누룽지를 좋아 하지만 나는 누룽지를 먹으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며느리가 힘들게 일하고 와서 아픈데 누룽지를 끓여주시고 난 기분이 좋지가 않더라."
"엄마!"
막내놈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더니
"엄마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마가 일어 나서 아침밥을 차려야지. 할머니가 누룽지를 끓여주든 무엇을 주든지 감사하게 먹어야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지금.엄마가 하는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이구 깜짝이야. 이놈이. 엄마는 아팠잖아."
"할머니 할아버지는 칠,팔십대의 노인이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무얼 바라는거야."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바라지 말아. 평생을 아프셨던 분이라서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분이야.
그 분에게 100을 드리면 1이 돌아오면 고마운 분이야."
남편이 막내를 바라보며 대견한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나.
나는 딸이 아니라 며느리였지.
시집 온지 30년이 되어서 이제는 시집에 가는 것이 내 집 갈 때 같을때 가 많았고 부모님이 친정 부모님 같이 느껴 질 때도 많았다.
"그래. 막내 네 말이 옳다. 내가 잘못했네.'
"엄마는 흥분하면 막 내뱉듯이 흥분해서 말해. 그때 내가 설명하면 표정이 잘못했구나하는 표정으로 바뀌거든."
막내 말이 맞았다.
나도 젊을 때 큰 집에 가면 큰 엄마가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면 화가 났었지.
아들아이 앞에서 큰 잘못을 하였구나.
한 동안을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막내 아들!
막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행사를 할때 친구와 후배를 데리고 와서 "우리 엄마"라고 인사를 시켰던 아이.
어느 후배는 피로회복제를 사 가지고 와서 정중히 고개 숙이고 인사를하며 말했다.
"ㅇㅇ형 어머님이시지요? ㅇㅇ형에게 들었습니다.ㅇㅇ형 참 좋은 형이예요. 재미있고 공부도 열심히해요."
행사가 끝나고 철수 할때 도와준다며 자기까지 8명의 친구와 후배를 데리고 왔는데 막내가 제일 키가 작았다.(176cm). 막내 빼고 모두 장학생이라고 했다.
이과에서 공부했으나 재수하여서 문과인 경영학과로 입학한 막내는 회계,통계,수학에는 강하나 교양과목이나 문과부분이 취약했다.
부산에서 동창이 한명도 없는 대전에 유학와서 저 보다 반듯한 친구들을 잘 사귄 아들 녀석이 대견하였다.
지방의 국립 대학을 다니지만 미래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아들아이.
비록 막내놈에게 세게 한 방을 얻어 맞았지만 이제는 자식에게도 배울 실버 초입에 서 있는 내가 객관적으로 보인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