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서운 편견
지금 나는 어쩌면 용기있는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여고 동창중에서 여성적이며 지적인 외모에 미술을 전공한 친구가 있었다.
나와 다른 여자 대학의 메이퀸이 되기도 했던 친구였다.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같이 과외를 했으며 ,대학에 진학을 하고도 평창동의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어느 날인가 대화중에 친구가 내게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바꿀 수 있다면 그 것은 고향이야."
그 친구의 본적은 남도의 섬 "나로도"였다.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여대생들이 학교 친구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 아이는 다 좋은데 한가지 안된게 있어."
"그게 무엇인데"
"고향이 전라도야."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힉과에도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진학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소위 명문 여대라고 불려서인지 각도의 명문 여고 출신은 다 모였었다.
광주의 명문여고에서 온 친구들이 6명이었는데 그 들은 늘 똘똘 뭉쳐서 다녔다.
우리는 그들을 She 6 (그 당시의 인기 남성그룹He 6를 비유해서 ) 라고 불렀다.
경상도에서 온 친구들은 또 그 들끼리 다녔고, 서울 아이들은 여고 동창들끼리,각 학교에서 혼자 온 아이들은 그런 아이들 끼리 다녔다.
She6 는 모두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두 땡땡이를 칠 때도 그 아이들은 단결하여 강의실을 지켰다.
우리들은 부모에게 들은 겪어 보지 않고 믿는 편견으로 그 들을 대했고 그 친구들 역시 개의치 않고 그 들끼리 잘 다녔다.
지나고 보니 공부하기 싫어했던 우리가 잘못인데 우리는 그 친구들을 독하다고 흉봤다.
지금까지 나의 글을 읽은 사람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 차렸을 것이다.
나는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파주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로 와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경기도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충청도 남자와 결혼을 하였으며 결혼후에 안양에서 잠시 살다가 부산에 내려와서 26년을 살았다.
나의 아버지는 평북 신의주가 고향이며 어머니는 강원도 원주 사람이다.
나의 두 아들 중에 한 아이는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막내는 경상도가 출생지다.
나는 늘 부산을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았기에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산 부산을 고향이라고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우리 막내는 부산이 제일 좋으며 계속 부산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지금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의 한 곳 전라 북도의 한 소도시 "국립대학"에서
"대학생을 위한 책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전라도에는 연고가 없어서 처음 오는 곳이다.
이 곳의 첫인상은 서해의 아기 자기함과 함께 무척 다정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말씨도 충청도 사투리와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웃의 도시는 충남 서천과 장항이 가까이 있어서 말씨가 같다고 한다.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학생은 순수하고 영혼은 맑았고 젊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
사람들은 친절하였고 음식 맛은 내가 가 본 도시 중에서 최고 였다.
싼 가격에 반찬은 푸짐하였다.
내가 부산에서 26년을 살 면서 선거 때 가되면 견딜 수 없는 불쾌함과 함께 이땅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전라도"나 "경상도"에 태어 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를 크게 느끼곤 하였다.
26년을 부산에 살았으니 말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학생은 행사하는 학교에 내년에 복학할 경영학과 학생이다.
183cm의 잘 생기고 정직하고 성실한 학생이다.
친구들도 대부분 인물도 좋고 심성이 선한 휴학생들인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네 다섯명이 돌
아 가면서 마감을 도와 주곤하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서울의 대학에 편입을 준비하거나 ...모두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고 지나가는 여대생에 대하여 품평회도 하는 ...가끔은 저 아이들이 군에 정말 갔다 왔나 의심이 들 정도로 순수하고 천진하였다.
나에게 친구에게 하듯이 마음을 열어 놓았고 그 들의 고민과 사랑을 이야기 하였다.
그 들의 모습에서 막내 아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많이 미안하였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싶었다.
전라도의 아품을 머리로는 이해하였으나 마음으로 이해해 주지 않은 나의 모습이 깨달아졌다.
나의 어리석은 편견과 상식적이지 않은 판단에대하여 부끄러웠다.
과연 나 뿐일까?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충남 금산이 전북에서 충남으로 도명이 행정적으로 바뀐지가 오래 되었는데
금산사람들은 전북사람일까? 충남 사람일까?
우리들의 끼리끼리 문화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치유 할 수 없는 고통으로 ,고질병화되고 있다.
한 번씩 남도의 문화를 접하고 마음과 마음끼리 만나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혹자는 일주일을 살고 무엇을 아느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살아도 알 수 있는것도 있고 평생을 살아 보아도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그 동안 고질화되다 시피 한 편견에 동참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리고 사과하고 싶다.
나와 함께 한 영혼이 맑은 젊은이들 모습 속에서 갑자기 깨달아 진 커다란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