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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캠페인 " 99세까지 88(팔팔) 하게 살자"

모과 2006. 6. 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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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까지 건강하게 사셔서  셋째 아들 며느리 효도 많이 받으셔요.
그 동안 걱정 많이 드려서 죄송합니다.
ARTICLE

 시고모님 칠순 잔치에 갔다.

 

아버님(84세)에게는  두 살 위 누님 한 분과 여동생3분(82세,71세.64세)그리고 작은 아버님이 계시다.

시댁 어른 들은 부지런하시고 채식을 위주로 생활하시고 마음이 너그러우시다.

술은 체질에 맞지 않아서 못하시는 분이 많고 담배도 안피는 분이 많다.

 

원래 본가는 충남 덕산 나바시(나박시):나씨와 박씨의 집성촌이라고 함.

그 곳에서 6대째 살고 있다.

99세 7월에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님은 농사를 지어서 마을의 땅을 조금씩 조금씩 사 모으셨다고 한다.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평생을 교직에 계셔서,시골 본가는 이번에 칠순 잔치를 하신 고모님이 할아버님을 모시고 사셨다.

 

고모님 내외분은 농사를 지으셔서 삼남매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우셨다.

농사 지으시며 힘이드 실때는 "트롯트"를 부르시며 스트레스를 푸신 듯하였다.

 

"박 을순여사 칠순 잔치"   마당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홍성과 덕산 사이에 있는 OO웨딩홀 2층에는 이미 할머니들로 가득하였다.

 

"가르개"마을 어른들;냇물을 가로질러 가야 있는 마을에 시집을 가셔서 "가르개"고모라고 한다.

 

할아버지들은 몇 분 안계시고 100여명의 할머니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고모님이 살고 계신 아파트의 노인정의 할머니들...

시골에는 나이드신 분들만 살고 계신 것을 정말 실감하였다.

 

고모님은 옥색 한복을 곱게 입고 두 따님이 화장도 머리도 예쁘게 해 주었다.

"트롯트 메들리 13"에 맞춰 흥겹게 춤도 추시고 노래도 부르고 상당히 행복한 분위기였다.

 

보고 있는 내가 더 행복해 지는 것 같았다.

인생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한 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현재 고모님은 홍성읍에 살고 계시다.

큰 아들 내외가  교사이므로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같은 아파트의 다른동에 살고계신다.

첫 사위는 회사원이고 둘째사위는 공학박사인데 얼마전 6급 공무원으로 대전시에 특채되었다.

 

칠순인 지금도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하신다.

시댁 식구의 특징은 연세보다 십여년 젊어보인다는 것이다.

손님으로 오신 할머니들이 고모님보다  연세가 많아 보였다.

 

고모님!

당신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한국의 전형적인 시골 어머니!

 

홍성까지 너무 멀어서   다섯고모님중에 막내 고모님만 교육을 받으셨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서   홍성까지  다녀야했다.

막내 고모님은 큰 아주버님보다 한 살 위신 65세시다.

막내 고모님과 큰 아주버님은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 초등학교" 동창이시다.

가까이   "수덕사"가 있어서  학교 이름도 그렇다.

 

손님들이 춤을 추시고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즐기시는 동안 아버님과 "갯골'고모님께 인사를 다녀 왔다..

백내장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으셨다.

86세의 고모님은  바깥 출입이 어려워서 혈색이 없으셨지만 건강하셨다.

 

 

잔치가 끝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잔치이야기와 오신 손님들 이야기를 아버님이 해 주셨다.

 

"아버님 생신 때도 그곳에서 하고 시골 집에 가서는 차나 한잔 씩 하시면 좋겠네요.

식사를 하면서 큰 형님과 아주버니께서 하신 말이 생각이 나서 말씀드렸다."

 

이번 겨울은 시골 본가로 이사를 가셔서 지내시려고 매주 시골에 가신다.

정년 퇴직한 큰 아주버님 ,안산에 사는 큰 시누님내외분,막내 고모님 내외분 들이 가셔서

담장을 제주도 돌담집같이 크고 넓게 쌓으셨다.

 

담 주변에는 연산홍1000그루를 심으셨다.

 

기존 시골 집 골격은 그대로 두고 원 룸 형태로 여러채 로 나뉘어 편리하게 고치는 중이시다.

 

이번 85세 생신은 고향 집에서 친구 분들을 모시고 싶다고 말씀하였었다.

"아니다.88세에 잔치를 크게 해야혀.요즈음은 88세를 중요하게 생각한더먼."

"왜 그런데요? 88올림픽도 아니고요."

"요즈음 하는 이야기가 있어.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고"

"하하하하..."차 안은 웃음으로 가득하였다.

 

 

99세까지 장수하신 할아버지는 움직임에 어려움이 있기전까지 농사를 지으셨다.

농사를 그만 두신후에는 지게에 도시락을 지시고 매일 선산을 오르내리시며

성묘하시고 그 곳에서 낮잠도 한 숨 주무시고 산소 가는 길 가의  풀을 베어 정리 하셨다

자손들이 고향에 오면 성묘하기 좋게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해마다 농사지은 쌀을 보내주셨는데 우리는 5가마니를 보내 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멸치와 미역"을 보내드렸더니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쌀을 주는 것인데  너희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의미가 없으니 앞으로는 선물을 보내지 말거라."하셨다.

 

할아버님 생각이 나서 아버님께

"할아버지는 진지 잡수시고 시계를 보고 계시다가 정확하게 30분 되면 약을 드셨지요."

"허허허,그래서 99세까지 사신거여."

"할아버지 84세의 건강하신것과 아버님을 뵐때,아버님이 더 건강하셔요.할아버지는 99세에 친구가 없으셔서 외로우셨지만 아버님은 장수 시대니까 친구 분이 계실거예요.'

"아녀,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별로 없어. 다 죽었어.어딜 가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어.'

"아버님은 70세로 밖에 안 보여요."

 

며칠전  팔에 종기가 나서    피부과에 가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셨다.

"의사가 내 얼굴을 보더니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하더라."

"하하하  너무 젊게 보이셔서 그렇지요?"

"그래.피부 나이는 69세라고 하더라 .그래서 고맙다고 했지."

 

돌아오는 길은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저녁  6시 인데도 사방이 깜깜하였다.

오랜만에 외출하신 어머니께서

"외식하고 가유. 그때 그곳이유."

관절염과 골다공증 후유증으로 키가  10  cm나 줄어 드신 어머니는  외출을 잘 안 하신다.

늘 혼자시고 기억력이 떨어지셔서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시니 사람들이 웃는 것이 싫으신지 점점 말씀이 줄어 들었다.

 

어머니께서도 몸은 피곤 하시지만 기분은 좋으신 듯 하였다.

나를 배려하여 집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가자시는 어머니.

 

아침에 일어 나니 화단과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였다.

호미로 화단을 일구고 풀을 뽑으니 비온 후라서 쑥쑥 뽑혔다.

지난 번에 내가 심은 호박은 많이  자라서 조그만 호박도 열려 있었다.

 

남편과 아버님은 광에 있는 잡동산이를 정리 하셨다.

 

지남 번 시누님에게 얻어 온 진돗개 "삼순이"도 목욕 시켰다.

"삼순이가 원래 배지색이 아니었어요?"

"아녀,원래는 흰색인데 때가 묻어서 그랴.아주 까만색으로 염색을 해 줄까 혀."

"하하하하"

모두 기분 좋게 웃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내게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바둑은 두겠는데 풀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뽑으면 일어 설때 어지러워서"

"나는 무릎이 아파서."

 

평생을 자식에게 봉사하다시피 하시고 그까짓 거 풀을 한 번 뽑아 드렸다고 고마워하시니

내가 자꾸 시댁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아버님은 고혈압약을 드시고 계시고 어머니는 류마치스성 관절염을 근 40년을 앓고 계시다.

 

 

어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에미야! 너 원두 커피 좋아하냐?"

"아니에요.저는 귀찮아서도 못해 먹어요."

'좋아하면 기계 가지고 가라. 이것으로 갈아서 먹으면 되는데."

 

내가 싫다고 하자 이번에는 은 수저 두벌을 주신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쓰시던 것 이네요. 어머!   집안의 가보인데 고맙습니다."

남편이 잊어버린다고 얼른 가방에 넣고 있었다.

 

장사를 오래 해서 낮에는 늘 상점안에 있어서 몰랐는데,

낮에 운동을 하면서 보면 지팡이를 집고 힘들게 운동 하시는 노인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두 지팡이로 걷는 분도 계시는 데 외출을 할 때는 꼭 며느리가 부축을 한다.

 

99세까지 사신 할아버님은 노환으로 딱 한달 누워계시다 가셨다.

자손들에게 병 바라지 할 기회를 주시느라고 그러 신 듯 싶다.

막내 시고모님과 이제는 돌아가신 넷째고모님 ,큰 형님이 조를 짜서 병 간호를 하였다.

빨래는 고모님들이 하셨고 음식은 유난히도 사랑을 받았던 큰 형님이 하셨다.

 

할아버지보다 3세 연상이셨던 할머니는 93세 때 점심 진지 드시고 쓰러 지셔서

일주일간 잠만 주무시다가 가셨다.

 

오복 중에 죽음의 복도 들어 간다고 들었다.

 

부지런히 건강을 챙겨서 체중을 감량하고  채식을 많이 섭취하고,매일 한 두 시간 씩 걷고,

무엇보다도 편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시댁!

그래서 나는 자꾸만 시댁에 가고 싶다.

 

막내 아들이 졸업 후 일자리를 잡으면  시골에 가서 부모님과 살고 싶다.

그 동안 효도를 못 했으니 이제 우리가 부모님과 함께 생활 하면서 위안을 드리고 싶다.

 

내 안에 미안함이 가득하므로  불효자가  나중에 효도 한다는 말의 의미가 깊이 깨달아진다.

 

 

"팔팔하게  99세까지 건강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