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We are KAI, 노미경대표(여/42세)
Q1.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이름, 나이, 가족, 회사,학력등입니다.
노미경: 1970년생으로 남편(47세/ 박경훈/(주)KoRea A.I 대표이사 )과 일남 이녀(수주/18세, 아들 현서/11세, 소형/8세)의 세 아이, 그렇게 5식구이고 숙명여대 사학과를 1993년에 졸업하고 결혼 이후 동대학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여 인테리어 디자인 석사학위를 1999년에 받았습니다. 내년 2012년에 다시 박사과정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 남편 박경훈 대표이사의 대학원졸업논문
남편인 주)KoRea A.I 박경훈 대표 이사 도 건축석사를 마쳤다. 부부가 남편은 건축을 설계하고 아내는 실내 디자인을 하는 동업자이며 평생의 반려자이기도 하다.
Q2. 우수블로거로 블로그를 통해서 이미 이름(블로그명: 시크릿의 스페이스홀릭)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지금의 병원리모델링에 선두주자가 되신 경위를 말씀해 주세요.
노미경: 결혼하고 바로 남편과 함께 시작한 디자인 회사는 경험 없이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에 고객들이 좋게 봤습니다. 그분들이 입소문을 내 주셔서 끊이지 않게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작은 공사라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더니 점점 입소문이 좋게 났습니다. 그러던 중 고가도로 밑 작은 땅을 경매로 구입하여 지금의 사옥을 남편과 함께 설계 시공하게 되었습니다. 7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땅에 집과 사무소 그리고 매장을 겸비한 6층 규모의 복합건물을 지어 대전시 건축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대전시 건축상을 수상한 (주)KoRea A.I 대전 본사
큰 아이 초등학교 재학 중인 성모초등 학교를 설계 및 시공을 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학교의 공사를 진행하던 중 근처에 있던 대전성모병원에 첫 발을 딛고 임종실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병원 리모델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리모델링한 대전 성모초등학교
30년 이상 낙후된 병원을 장기간의 시간에 걸쳐, 그러나 파트별 단기간으로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운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다른 병원과는 차별화된 컨셉으로 마치 내 집과 같은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병원으로 리모델링된 대전성모병원은 전국으로 입소문이 나게 되었어요.
대형병원들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종합병원 리모델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동안 병원도 침체되고 적자운영으로 힘든 경영란을 극복하게 된 큰 동기가 됐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편리하고 아늑하게 디자인 된 병원 리모델링
Q3. 사업 때문에 대전과 서울에 회사가 두 곳에 있어서 주말 부부인데 어려운 점과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부부가 같은 일선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장점과 단점이 다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시각은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서로의 개인적 취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 2003년 우수건축상을 받은 전원주택: 남편이 건축하고 아내가 실내 디자인 한 작품이다.
*(주)KoRea A.I는 개인주택건축, 아파트 병원리모델링 ,실내 디자인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있다.
부부가 서로 일할 때엔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강요할 수 있어 때론 발전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요. 현재 시스템은 건축설계와 시공을 대전 본사에서 추진하고 실내디자인은 서울 사무소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감각적인 유행과 정보에 민감한 부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건축은 상호 공존되고 때론 충돌하는 부분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어 좋은 점입니다.
* 서울의 자택이 있는 반포 자이 아파트안의 유치원 리모델링한 모습
Q4. 2녀 1남의 주부로서 어머니와 CEO를 잘 병행 하시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노미경: 아직 제 아이들이 크는 과정이고 저 역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 채 그저 지금 순간 판단으로 제가 해야 하는 것,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들을 먼저 하고 있을 뿐이지요. 아이의 알림장을 날마다 체크하고 글씨를 바르게 쓰는가, 숙제 준비물을 잘 챙겼는가 정도밖에는 해 줄 수 없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저와 한 식구이기 때문에 그들도 저와 같이 함께 밥을 먹고 지내는 식구의 개념으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길 원하는 것이지요. 현장이 멀리 있다 보니 날마다 볼 수 없기에 제가 현장으로 가서 자주 체크하고 그들을 독려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함께 더불어 일에 대해 그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하는 것이구요.
* 논현동 서울사옥 내부 사무실
Q5. 노미경사장님의 인생관과 회사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남편과 사업을 지금껏 한 사무실에서 15년 이상 함께 해 왔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를 믿어주신 고객들의 도움으로 일 많은 회사로 이름나 있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사실 부부라고 말하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작은 사무소에서 사장과 실장이 같이 거들며 일하는 모습이 누추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고객은 늦은 밤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신발을 사서 신으라고 주셨던 돈을 기억합니다. 그 때 고객은 지금도 고객이시고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언제나 불러주시는 평생 저희 회사의 고객이신거지요. 마찬가지로 한 번 맺었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도록 그들이 저희 회사를 성원해 주시고 믿어주셨던 부분을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회사를 거대한 규모와 외형을 키워나가는 것 보다는 일하는 직원들과 고객들이 다같이 즐겁고 서로의 인연에 대해 오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같이 즐겨가는 것이 제 인생관이자 회사를 꾸려나가는 앞으로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Q6.큰 따님이 카나다에 유학을 가 있는데 조기 유학을 가게 된 동기와 큰 아이에 대한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입니까?
노미경: 큰 딸은 지금 18세이고 중학교 1학년에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저는 아픔이 아픕니다. 큰 아이에 대한 제 욕심으로 많은 부분을 그 아이에게 잘못했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 큰딸 수주(18세)양이 초등학교 졸업식날
결혼하고 바로 가진 아이였기에 그 당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아이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맡겨두고, 오로지 늦은 밤까지 일에 몰두헸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대학원 진학으로 공부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당시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한창 사업이 일어설 시기였으니 언제나 아이는 뒷전이었습니다. 단지 좋은 학원에 보냈고 학업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아이에게 들인 비용만 생각하면서 나무라기도 했었습니다.
* 사랑스런 두 딸의 모습
캐나다에 계신 사촌 이모님은 절실한 크리스찬이시고 딸만 둘인 가정으로 아이들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키우시는 분십니다. 큰 아이 수주(18세)가 어릴 적부터 그 언니들과 함께 지내려는 마음을 보여서 유학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수주는 그 곳에서 나중 엄마와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면서 실내디자인과를 지망하려고 그 계통의 공부를 하고 있어요. 피아노를 특기로 계속 치고 있어서 캐나다에 피아노 등급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수준급입니다. 동생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안 혼자 줄곧 자라온 수주. 언젠가 방학 때 제게 와서 말했던 말“ 엄마 나 어릴 때 늘 혼자였고 외로왔어” 라고 늘 제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수주는 커가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지금은 친구 같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맏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7. 디자인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서울로 사무소를 내니 스펙 좋은 사람들이 많이 면접을 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지원자 중엔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부모님께 의지하거나 너무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성향은 이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처음 자신을 낮추고 그룹의 일원이 되기까지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좋은 드로잉 기술을 습득하더라고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독서와 경험을 통해 창의적 안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머니를 모시고 찍은 가족사진 (2007년도)
Q8.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언제입니까?
노미경: 현재 건축사업의 모토가 되었고 우리 회사의 첫 포트폴리오가 된 시집의 집을 지을 시기였습니다.
* *충남 금산에 지은 시집의 주택
여유자금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의 수입으로, 지금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집이네요. 방 3개 거실 주방 화장실 1개를 가진 25평형 전형적인 농가형 주택이었지만 당시 모험이었고 초라한 시골집에서 춥게 살고 계시는 부모님의 집을 고쳐드리면서 단 한 번도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던 저희 부부가 직접 기초부터 시멘트를 나르고 벽돌을 쌓았던 땀이 서려있던 집이기도 합니다.
레미콘을 치고 철근을 사는 돈이 없어 자나 깨나 꿈 속에서도 일 톤의 철근 값이 어디에서 나올 까 하며 손 붙잡고 기도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지금은 미소 짓게 되는군요, 저희는 절실했었지만, 어른들은 저희가 무리하게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만류하셨고 주변 친척들도 아직 어린 철없는 부부가 일낸다면서 아무도 고운 시선으로 봐주지 않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Q9. 중, 고등학교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얼마 전 모교인 유성여고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후배들에게 집에 계신 부모님 마음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부탁 했습니다 모든 가정이 잘 살고 못사는 것과 관계 없이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게 잘 해주고 싶다고요. 해주고 싶어도 그걸 채워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딸이 되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이들이라면 공부보다 더 중요한 근본이 채워지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도 높아질 꺼라 생각합니다.
* 2011년 5월 '자랑스런 선배'로 모교를 방문해서 특강을 하는 모습
Q10. 노미경 사장님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노미경: 단연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해가 바뀌면 제 방의 도배를 해주셨는데 도배지를 저보고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교육이 제 미적 감각을 더 크게 한 것 같습니다.
* 여동생 식구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중인 노미경대표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