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육

앙드레김의 스승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모과 2010. 8. 16. 06:30

공중파 방송에서 " 특집 다큐 패션청년 앙드레 김의 삶과 꿈"  특집을 보여주었다.

 

1.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계로 나갈 것을 꿈꾼  김봉남어린이

 

그가  대단한 것은  경기도 구파발 촌 어린이가  꾼 꿈에서 부터 시작한다.

 단조로운 일상에 하루에 몇 번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가까운 서울도 아닌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큰 꿈을 꾼 것이다. 그가 대단한 것은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공부에 들어 간 것이다.

영어와 지리를 좋아하던 중학생, 김봉남 은 6.25 피난 시절 부산에서 접하게 된 영화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영화속에서 "오드리 햅번'을 보고  의상과 아름다운 여배우에 매료 되었다.

4녀 1남의 귀한 아들인데 고졸인 것을 보면 집안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김민자 교수는 “이 시대 문화 정체성의 생성자이며 패션은 그 하나의 매개체다”며 앙드레김의 예술세계를 평했다.

디자이너 최범석은 “디자이너로서 평가하기보다는 아티스트로 평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가 하는 건 예술”이라는 소견을 전했다. : 자료 : 다음 통합 검색을통해서  인용

 

 2. 최초로 여성복을  만든  남성 디자이너 앙드레 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제 복장학원'에  등록했다. 당시에는 대학에 의상학과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한동안 '국제 복장 학원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였다.

 그는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선택했고  개척하는  길만 낸게 아니라 후배 들이 오기 좋게 꽃밭과 쉼터도 만들어 가면서 길을 갔다.

 

1965년 나는 효자동에 있는 진명여중 2학년이었다. 하교길에 경복궁을 돌아서 효자동 수예점에  가정 준비물을 사러 갈 때마다 "앙드레김 의상실"을 보았다. 품위있고 독특한 양장점이었다. 귀부인들만  이용하는 고급 양장점이라서  호젓한 곳에 있다고 들었었다.

 

 

 

 

 

앙드레 김은   모든 여성들이 한 번쯤은 입어 보고 싶은 옷들을  만들었다.

남성으로는 최초로 천사의 날개 같은 몽환적인 아름다운 옷을 만들었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나 입을 수 있는 야회복을 패션쇼에서 보여주었다. 예전부터 당대의 최고 여배우들을  메인 모델로 세웠다. 전계현, 태현실, 등 유명 여배우가 그의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것을  나는 "대한뉴스"에서 보고 자랐다.

 

3. 동양적이고 한국의 혼을 불어넣은  예술 작품인 의상

 

앙드레 김은 방송을 통해서  패션쇼를 보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하게 하는 큰 선물을 늘 주었다. 그의 쇼는 동양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스토리가 있었다. 

 

 

4. 한국인의 자존심과  아름다움을 알리는그만의 독특한 방법 

 

전세계를 다니며 "앙드레 김 패션쇼"를 해서 한국을 알렸다. 주한 대사관 부인들을 모델로 세워서 패션쇼를 했다.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의 의상을 200여벌 해주었다. 앙드레 김 의 끝없는 애국심과 의상을 총체적인 예술로 승화 시킨 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5. 앙드레 김의 배려있고 따뜻한   자식사랑법

 

평생 독신이었던 그가 아들을 입양했고 세상에 노출을시키지 않고 잘 키웠다.

나는 기사를 통해서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디자이너와 결혼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 가고는 집으로 누구도 초대 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어른들을 위해서 방에 들어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였다.  3명의 손자 손녀 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혔던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 아들의 입시때 진관사를 찾아서 불공을 드리던 앙드레 김

 

 

6. 트레이드 마크였던 흰옷을 입은  천사

 

내가 기억을 하는앙드레 김은 늘  흰 옷 차림이었다. 겨울이면 빨간색 체크무늬 목도리를  두른 모습을 가끔 봤다.

사실 남자분이  늘 화장을 하고  말년에는 머리에도 까맣게 색을 칠하고 다녀서 이해가 좀 안됐다. 그런데 4년 전부터 대장암을  이겨내느라고 고통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애잔해 진다.

 

어머니의 종교인 불교를  어린 시절부터 믿었던 독실한 신자였다는 사실도 놀랍니다. 종교색을 전혀 들어 내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융화 돼서 살아 왔던 앙드레 김 선생님의 삶과 예술이 존경스럽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선택했고, 스스로 자기를 변화시키며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정에서 받은 교육이 바탕이 되고 공부할 때 만난 수 많은 사람 중에 가르침을 준 분들도 많겠지요.

 

그러나 운명적으로 영화 속에서 "오드리 햅번"이 입은 의상을보고 자기의 운명을 정한 그 결단의 정신은 바로 자기를 가르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앙드레 김 선생님의 삶과 꿈은 교육의 혼란기인 이 시점에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면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자기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였던 앙드레김은  자신의 명성과 재능을 어린이를 위해 아낌 없이 내놓은 분입니다. 2001년부터 유니세프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5차례의 자선패션쇼를 개최하는 한편, 의상 수천 점도 기증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어린이를 위한 후원행사에 빠짐 없이 참석해 어린이를 위한 메시지를 전했으며, 많은 스타들을 유니세프활동에 동참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앙드레 김의 이러한 헌신은 어린이를 위한 기금조성과 유니세프사업 홍보에 크게 기여해 세계 어린이의 삶을 개선했습니다.[유니세프 홈페이지의 조문에서 발췌 ]

** 유니세프란 : 국제연합아동기금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유니세프 아동의 보건·영양·교육에 대한 각국의 노력을 지원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UNICEF라는 명칭은 1946년 12월 전쟁피해국 아동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제연합국제 아동 비상기금.

 

** 다음 메인,교육코너 베스트로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