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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공부"는 "엄마공부"라는 속설의 함정

모과 2010. 4. 1. 13:31

" 초등학교 공부가 아이들 공부인가?  모두 엄마 공부지"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올바른 학습태도,예습복습, 준비물을 챙기는 습관, 급식에서 음식남기지 않기 , 친구사귀는 방법, ...모든 습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단지 아파트에 살다보니 그 말은 엄마와 촌지+ 극성으로 통하는 말이었다.

엄마가 치마 바람을 내고 학교에 자주가서 담임에게 봉투를 주고 아이를 잘 봐 달라고 하면 그아이를 키워준다고 많이들 믿고 있었다.

두 아들이   32세 30세 청년으로  자랐다.  이제 나는 개관적으로 우리 교육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엄마들이 하는 그말의 엄청난 함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환상의 짞꿍에 출연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나는  큰 아들이 3살 때부터 16살까지 전업주부를 했다.

막내까지 임신하고  심한 입덧과 두아이의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 가기 전에 미술학원을 일년, 아파트내 유치원을 일년을 보냈다.

 

당시에는 대부분 엄마들이 전업주부가 많았다. 15평 주공아파트에 살았는데 아파트의 주부들이 대부분 내 나이 34세(아들 초등 학교 1학년때) 와 비슷했다.  7명 정도 엄마들이  거의 매일 만났다.

바로 옆동,같은 동 ,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 출신 엄마들이었다.

전직 중학교 교사였던 나,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 전직 은행원,전직 회사원 3명이었다.

대졸2명,고졸 4명,중졸1명이었다.  남편은  대부분 회사원이었다.

 

주로  2층인 우리집에서 모였다.  다른 집의 아빠들은 일찍들 출근을 하니까 집안을 모두청소를 하고 슬슬 우리 집으로 놀러들 왔다. 남편이 좀 늦은 출근을 하기 때문에 나는 집도 치우지 않은 상태인데 늘 우리집으로 모였다.

오전 11시쯤와서 오후 4~5시까지 있다가 저녁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 갔다.

나는 처음에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라면도 끓여 주었다.

어느 엄마는 김밥을 만들어 오기도 했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왔다.

커피를 매일와서 마시니까 미안하다고 커피를 한 병 사오는 엄마도 있었다.

 

한  두 달 그런 생활을 하니  몸도 너무 피곤하고 집안도 엉망이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엄마들은 장을 봐서 깨끗이 치워놓은 집으로 들어 가면 되지만 나는 그때부터 집치우고 반찬만들고 정신이 없었다.서로의논해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만나서 두시간 정도 차를마시자고 했다.

 

* 시트콤 의 한장면 : 내용과 관계 없으나 우리들도 매일 이분들 같이 모여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나누던 70%가 학교와 담임과 학습방법과 주로 학교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30%는 남편이야기와 시집 이야기였다.

 

나는 전직교사였다고 해도 초등교육에는  잘 모르니까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엄마에게 주로 물었다. 그녀의 대학 후배로 초등교육전공을했다.  당시에는 교대가 2년제 였을 때였다.

그 엄마의  큰 아들은  우리 막내와 동갑이라서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  선생님들이 편애를 해?"

"봉투를 주면 그아이만 더 잘봐줘?'

" 초등학교 1학년에게  제일 필요한 건 뭐야?"

 

우리는 늘 그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대답은 한결  같았다.

 

" 교단에 서면 아이 자체만 보이지 저 아이는 촌지를 주었지, 저 아이는 촌지를 안주었으니까 시키지 말아야지 하는교사는 없어요.  교사들도 엄마들같이 학부모 특히 엄마들 말을 많이 해요. 어느교사는 촌지를 주고 간 엄마가 나가자마자 돈을 꺼내서 들고 이것으로 나를 좌지우지 하려고해?" 하며 동료 교사에게 보여주던 사람도  봤어요. 그냥 준비물 잘 챙겨보내고 복장 단정하게 해서 보내세요. 아이가 잘하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나는 봉투를 받지 않았더니 돈이 작아서 그러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엄마가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교육을 해야 해요.

 

당시에는 반장,부반장 엄마는 한달에 고정적으로 담임에게 O만원을 준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학기초, 스승의 날, 운동회, 소풍에는 학급 임원들이 돈을 거두어서 담임에게 "목욕비"라고 준다고 했다. 매주 동학년 회의를 하면 반장 엄마들이 돌아 가면서 담임들의 간식을 사서 주었다.

 

우리 모임의 엄마중에 대부분 촌지를 주었다. 반장 부반장이 된 엄마의 경우였다.

나는 남편이 선생님이 정말 고마우면 2월말 학년을 마칠때 가서 인사를 하라고 말에 공감했다.

그러나 아이의 담임의 얼굴도 모르는것은 경우가 아니니 학기초 전체 학부모 회의에 꼭 참석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에  인삼 한통이나  롤케익 두개들은 것 등을 포장해서 아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학년을 마치는 2월에 찾아가서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촌지(5만원)를 드렸다.

선생님 가족들이  외식 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마음은 모시고 식사를 하고 싶으나 그게 더 좋을 것같았다.

 

**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기전 한 달 가량을 마음이 설레서 잠을 다 설쳤습니다.

 학부형이 되는게 너무 좋고 기뻤습니다.

한편 혹시 엄마가 몰라서 아이에게 제때 해주지못하면 어떻게 하나 ?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서로 만나서 정보도 주고 받고 음식도 해먹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킨 철칙이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않았습니다.

전직교사가 둘이나 있는데 그것은 지키게 해야지요. 친구들끼리라도 룰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모임에서 연락이 되는  엄마는 3~4명입니다.

한 아이는 사법고시가 됐고 한아이는 대기업의 신규개발부에 ,우리집 아들은 은행에 입사를 했습니다.한 아이는 하위권 4년제 대학에 들어 갔다는 소식 이후에 연락이 끓어졌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예습,복습, 준비물챙기기,일기지도, 꾸준함과 성실성이었습니다.

저의 30대를 참 좋은 엄마들과 보낸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