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빼고는 다 늑대라고 가르친 친정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다.
이북에서 6.25때 큰아버지와 둘이서 남으로 온 아버지는 북에 가정이 있었다.
이북에서 결혼후에 오빠를 낳고 남쪽으로 왔다가 3.8선이 막히는 바람에 돌아 갈 수가 없었다.
국군으로 원주에 주둔했던 아버지는 원주 공설운동장 근처 학성동에 살던 어머니와 연애 결혼을 했다.물론 총각이라고 속이고 결혼을 했다.
어머니가 임신을 하자 딸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북에 아들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딸을 낳고 싶으셨다고 했다.
* 어머니 42세 ,아버지50세 , 나의 대학 축제때 오셨을 때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기생집에 다니다 걸려서 여러 고등학교를 전학다니다 졸업을 겨우한 한량이었다. 큰아버지 말에 의하면 보통 학교 5학년일 때 집의 송아지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할머니는 장남인 큰아버지에 정성을 쏱고 차남인 우리 아버지는 증조할머니가 키우셔서 자기 절제 교육을 못받으신 것같았다. 증조 할머니에게 무조건 사랑을 받아서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었다.
아버지도 장자 우선 교육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맏딸인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리고 나를무조건 믿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서울로 유학을 와서 고2 때 가족이 합쳐서 살 때까지
외할머니와 살면서 내가 늘 정도로만 살았던 이유도 된다.
돈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고 마작을 즐겼던 아버지때문에 어머니는 참 힘든 인생을 사셨다.
그러나 딸인 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과 어른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
할머니가 키워서 아버지는 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몸에 밴 분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무능한 남편이었지만 자식들에는 참 사랑을 많은 사랑을 준 분이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도 22년이 지났다.
이런 아버지가 내가 대학을 입학하지 말해준게 있다.
" 아버지 빼고는 다 늑대라고 생각해라"
* 대전 동물원 오월드에서 본 늑대 두마리 :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호시 탐탐 뭘 노리는 것 같았다. 다른 동물들이 느긋하게 앉아있는 것과 비교적이었다.
내가 여중,여고, 여대를 나왔고 시대가 보수적일 때 결혼을 해서 아버지의 말이 합당하게 적응됐다
남자라고는 미팅에서 만나는 파트너나 친구의 오빠 한 두 명만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던 시대에는 기가막힌 일이지만 남자와 자면 무조건 그남자와 결혼을 하던 시절이었다. 결혼 다른 조건보다 순결을 버렸다거나, 뺐겼다거나 한 것이 결혼의 우선 조건이었다..
여자집이 아무리 좋은 집안이라도 딸이 순결을 버렸다(?)면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결혼을 시켰다. 혼전 순결을 목숨처럼 알던 시대도 있었으니 지금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내게 가르쳤던 말은 그당시에 대부분의 아버지가 딸들에게 가르쳤던 말 같다..남자는 결혼전까지 믿지 말라는 내용인 것이다.
나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남편과 시댁에 적응하면서 33년을 살아 왔다.
고지식하고 한길만 보고 살아온 나는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남편밖에 모르고 살아 온 결혼생활이니까 그냥 그러고 사는 것인줄 알았다.
연애의 가슴 떨리고 이별의 가슴 시린 추억은 없어도 나는 남편과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살아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고지식한게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될 때도 있다.
요즘같이 성폭행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때에 더 필요한 말 같다.
정말 아빠 빼고는 다 늑대라고 가르쳐야 할 상황이 된 것 같다.
안타깝게도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 나는것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딸교육과 아들교육 지침서를 각 가정에 보내서 유치원부터 제대로 교육 시켜야 한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우리 자녀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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