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 사람은 그거 아니면 죽어요.
아들들이 30을 넘기니 요즘은 내가 자식들에게 배우는게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오래전에 어느 교육도서에서 읽었었는데 자식이 17살이 되면 부모와 수준이 똑 같다고 했다.
육체적인 힘도 지식도 부모와 자식이 수평을 이룬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력이야 부모와 비교를 할 수가 없겠다.
자식이 17살이 넘으면 지식적인 면에서 부모보다 점점 나아 진다는 말은 옳은 것같다.
부모는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 됐고 생활이 바빠서 겨우 신문이나 뉴스 정도를 보고 살고 있다.
자식들은 수능시험때문에 한참 공부를 열심히 할 때이고 대학에 들어 가서는 사회적인 현상을 잘알게 된다.
예를 들면
1.사람사이의 처세술은 엄마보다 월등히 좋은 것 같다.
2.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겉으로 표시를 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것이다.
특히 아들들은 군대에서 좋던 싫던 선임병과 후임병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인내를 겪고 왔다.
* 조교를 하는 씩씩한 천정명 배우의 모습이 멋이어서 사용, 내용과 배우는 관계 없습니다.
나는 아들들이 군대에 다녀 온 후로는 아들들의 충고를 경청한다.
아들들이 싫어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남편도 싫어 하는 일이기도 하다.
1. 버스나 기차 안에서 전화나 대화하지 말 것
2. 남이 틀린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들을 것
3. 버스 정류장이나 극장에서 다른 사람과 사소한 말도 하지 말 것
4.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말을 해주어도 못 고치니까 지적하지 말고 그대로 둘 것
5. 전화를 할 때나 말 할 때 목소리를 적게 할 것
위의 내용은 내게 해당되는 말이다.
아들들이 엄마를 사랑해서 권유하던 말을 내가 정리 해본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전화 통화는 하지 않는다.그런데 아들과 오래만에 만나면 듣고 싶은 말이 많아서 뭘 물으면 두 아들이 다 눈빛으로 내려서 말하자고 몇 번 했다.
그 후 아들들이나 남편과 기차를 타면 그냥 묵묵히 책을 읽거나 잠을 자며 간다.
물론 자가용을 타고 갈 때는 우리 식구들만 있으니까 계속 대화를 하며 간다.
이번 설 명절을 지내고 큰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올라 가면서 있던 일이다.
귀경차량으로 대전서 서울까지 8시간 가량 걸렸다.
몸이 편찮으셔서 큰동서 형님 집에 못가시고 집에 혼자 계시던 어머니에 대해서 말하게 됐다.
" 엄마! 할머니가 엄마를 참 좋아 하시는 것같아. 할머니 몸이 너무 편찮으신 것 같아서 안 됐어"
" 그래 엄마도 할머니 뵈면 참 허무하고 안타까워서 많은 생각을 하게 돼. 그래서 일 주일에 두 번을 할머니 댁에 가는거야"
" 엄마 ! 친척들 있는데서 나는 일주일에 두번 시댁에 간다 ..뭐 이런 말은 안하시는게 좋아요"
" 그래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운전을 하던 남편이 맞장구를 쳤다.
"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지 . 큰 엄마가 너무 수고를 하시고, 할아버지께서 고생을 하시니까 . 그리고 우리는 부산에 떨어져 살아서 도리를 많이 못했고 , 엄마가 갈 수 있는 조건이 되니까 가는 거야"
" 엄마 ! 우리 회사에 심리학을 전공한 여과장님에게서 들은 말인데 사람들에게는 보상심리가 있대. 내세울것이 없는 사람이 형편에 맞지 않는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것과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못한 친지들 앞에 늘 명품으로 휘감고 나오는 사람은 그 것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거래. 열등감에 대한 보상 심리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그냥 봐주는게 좋아. 그 사람은 그걸 못하면 죽어. 엄마는 상식에서 어긋나고 말이 안되는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말로 밟아 주는 게 있는 데 (바로 고쳐주는 )..나도 엄마를 닮아서 그런 점이 있어.. 그런데 그게 사회생활을 하는데 참 안 좋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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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60에 참 고운 김자옥씨 내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아니 그래도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데 모두 바빠서 식사를 빨리 챙겨드리지 못하는것은 좀 그렇잖아. 내가 서울에 오지 않았으면 내가 했을 텐데 ..사람이 많아서 부엌에 들어 올 수도 없는데 왜 막내 삼촌이 혼자 내려 가서 불도 안 킨 부엌에서 떡국을 드시게 하냐구. 막내 동서가 함께 가야 하는 것 아냐? 큰엄마는 늘 혼자 고생하시는데 꼭 큰엄마가 해야 하냐구 "
시어머니는 남편의 새 어머니로 50년이상 함께 살아 온 분이다.
막내 시동생과 막내 시누이만 어머니가 낳으셨다.
며느리들에게는 남편의 생모나 새어머니나 친어머니가 아닌 똑같은 시어머니일 뿐이다.
남편은 8살 때 돌아 가신 생모를 잘 기억도 못하고 있다.
큰동서 형님은 일주일에 두 번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고 죽도 끓여서 일인 분씩 포장해서 냉장고에 가득 넣어 두고 있다.
모두 큰 동서 형님이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큰동서도 66세의 노인이고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한 분이다.
큰형님은 맏며느리 답게 당신이 할 일만 하지 아래 동서에게 시키지를 않는다.
각자 자기들이 알아서 해주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엄마! 미처 생각을 못하는 분들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 엄마가 말하면 기분만 나빠 한다니까.
자기네는 뭘 그리 잘했냐? 고 생각들을 한다니까"
아들 말이 옳은 것 같아서 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이제 내가 할 일만 묵묵히 한다고 약속을 했다.
1월초 부터 일주일에 두번 수,목요일에 시댁에 12시 까지 가서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저녁을 함께 준비한다.내가 사간 시금치나 , 솎아낸 깻잎, 느타리 버섯들을 어머니께 다듬어 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양념도 만들고 밥도 한다.
음식솜씨가 없는 나는 일일이 어머니께 간을 보시라고 하고 음식을 만든다.
어머니의 머리에 지우개가 생겨서 방금 한 일도 기억을 못하실 때가 많다.
같은 말을 일 분도 안되서 또하시는데 대략 10번 이상이다.
어머니의 병은 외로워서 생긴 병이다. 부엌의 식탁에 앉아서 발이 퉁퉁부어 오르도록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신다.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드리고 ,같이 커피도 함께 마시고 ,귤도 하나씩 먹고 8시간 이상 있다가 온다.
식사가 끝나도 계속 대화를 한다.아버님께 학교에 근무하실 때 있었던 일, 인간 관계, 효, 대전 연세 동문회에서 03학번인 연대 출신 어나운서가 43학번인 아버님에게 왕 회장님이라고 인사를 했다고 말씀해 주신다.
명절날 며느리와 증손자,증손녀에게는 20,000원의 세배돈을 준 것은 며느리들은 수고를 하니까 증손주들은 오래 못볼 것이니까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88세의 아버님은 늘 올해 명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세배돈을 주신다고 했다.
나머지 아들과 손자들은 다 10,000원씩 주셨다.
나는 올해 지금까지 8번을 시댁에 갔다 왔다.
명절이나 공동 회식은 말고 시댁에 간 것이 그렇다.
신기한 것은 가면 갈수록 어머니에게 정이 가는 것이다. 온순하시고 다정하게 대해 주고 나를 좋아 해주시기 때문이다. 결혼 33년이 지나면서 나는 진정으로 시댁 식구가 된 것 같다.
우리 식구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못 찾아 뵙고 명절이나 생신 때도 주로 남편만 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남편만 매주 주말에 부산서 대전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예산 시골 집으로 6년 째 다니고 있다.
2008년 11월에 우리는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결혼 후에 아버님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어찌 다 보답을 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40년이상 퇴행성 관절염을 앓으셔서 늘 편찮으신 분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돈이 없고 빚만 잔득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야 물질적인 재산을 물려주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복이 돌아 갈 것 같아서이다.
나 역시 큰 수술을 여러 번 한 실버 초입의 아줌마이므로 , 며느리가 네 명이 대전에 살고 있으므로
일주일에 두 번으로 정한 것이다.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듣고야 깨달은 나는 나이가 점점 들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三從之道(삼종지도)라는 말을 하신 것 같다.
** 삼종 지도의 현대적인 해석: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1. 어려서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서 교육을 받고
2. 결혼을 해서는 부부가 뜻을 합쳐서 살며 아이들을 기르고
3.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도 배운다.
**나는 남편과 아들들의 뜻을 인정하므로 앞으로는 제안이나 의논하지 않고 묵묵히 내일만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함께 의논해서 분담했으면 하고 말을 했었는데 아들이 우려하던 반응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효도 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