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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잘 키웠다고 느끼는 순간

모과 2010. 1. 28. 13:44

가족들이 모두 외식을 하러 갈 때 어머니가 길에서 넘어지셨습니다.

그 전에도 골다공증으로  엉덩이 뼈가 부러져서 인공뼈를 해 넣는 큰 수술을 했습니다..

골다공증 후유증으로 키가 15cm 가 줄어서  옷들이 모두 작아 졌습니다..

근 40년을 퇴행성 관절염으로 투병을 하셔서 당신의 고통은  표현을 못할 정도입니다.  몇년 전에  무릎 한 쪽도  인공 관절을 넣는 대수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평생을 당신이  식사는 해드시고 아버님과 두 분이 살고 계십니다. 김치와 밑반찬은 시골집에서 시고모님들과  큰 시누이형님이 모두 해드리고 있습니다.우리 집 것 까지 함께 해주십니다.

어머니는 압력 밥솥으로  밥만 해 드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파출부 아주머니가 와서 청소며 빨래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넘어지신 다음부터는 혼자서 일어나시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계십니다. 

같은 동네에 세 아들이 살고 있고 셋 째인 우리는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큰 동서형님이  매주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오고 국을 끓여 드립니다. 큰 형님도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환자입니다.  두 세 정거장 거리에 사는 막내 시동생이 오며 가며 집안 일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는 막내 시누이는 매주 주말이면 시댁에 가서   어머님과 함께 있다 집으로 돌아 갑니다.

막내 시누이는 부여로 장거리 통근하는 교사입니다.

 

큰 아주버님도 정년 퇴직한지 10년이 지났습니다.  큰 집도 역시 부부만 살고 계십니다.  손자를 3개월 정도 돌봐주다  며느리가  육아를 위해서  퇴직을 하고 손자를 서울로 데려 갔습니다.

 

큰 형님이 너무 고생을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힘을 보태려고 지난  금요일부터  시댁에 갔습니다. 12시 전에 가서 점심 식사를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가 아버님이 퇴근을 하시면   저녁식사를 하고 치우고 8시에 시댁에서 나옵니다.

왕복 2시간 걸리고,시댁에 머무르는 시간  8시간 도합 10시간 있다가 옵니다.

 

그 동안은 저도 발목 치료를 받아서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자주 못 갔습니다.우리만 타향에  오래 살다 와서 늘 대소사에 많이 참석을 못한 편입니다.

우선 일주일에 한 번씩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해보니 하루 더 가야 겠습니다.

부산에서 직장에 다닐 때는 왕복 2시간 30분 통근 시간이었습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17개월을  묵묵히 다녔습니다.

이제 크게 아픈데도 없고 6월까지는 서점에도 안 나갑니다.

엑셀 자격증을 따고 서점에 복귀해서 온전히 한사람의 업무를 해내려고 계획한 겁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는 6개월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6개월간  일 주일에 세 번은 복지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두 번은 시댁에 가고  3일은 성당에 다니기로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 올해 74세인 김영옥님, 우리 어머님은 76세이십니다.[저는 김영옥님의 연기가 참 좋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밤 9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 오니 퇴근해 있던 막내 아들이 맞이해 주었습니다.

" 엄마! 할머니 좀 어떠셔?"

" 움직이지를 못하셔서  집안에서도 목발을 집고 다니시더라. 너무 아파 보이셔"

 

" 엄마 ! 엄마도  할머니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될지 모르니까 잘해드려"

 

오잉! 이렇게 기특한 말을 하는 청년이 내 아들이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 그렇지. 누구도 장담을 못하지. 네 말이 100% 맞는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일 주일에 두 번을 가려구 해"

 

" 응. 할머니 너무 안되셨어.  얼마나 쓸쓸하시겠어?"

 

나는 속으로 무척 막내가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아들 놈 무서워서 효도를 더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남편이 6년을 한결같이  거의 매주 대전 집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덕산의 시골집에  들어 갔다 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남편이 효의 교육을 몸으로 실천을 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 교통도시 대전답게 시내 버스속에 알림전광판이 있습니다.

 

대전시 유성구 진잠에서 1번 직행을 타고 가서 대전 충남 병무청 에서 513번 일반버스로  환승합니다.

 * 새로 개편 된  버스로선을 알리는 게시물이 정거장마다 부착되있습니다.

 * 환승역인 대전 병무청 버스정거장의 깔끔한 모습입니다.

 

저는 여기서 513번 버스로 갈아 타고 석교동까지 갑니다.

집에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환승을 하니까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 노선번호, 현재통과위치,도착시간을 표시하는 전광판입니다. 오차가 거의 없습니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시간을 알려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 됩니다.

 

시댁 근처의 농협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니 어머니께서 방에 불도 안 키고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낮에도 좀 어두우면 밝게 전기불을 키고 계시는게  노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좋다는 말을 듣고 저는 방을 늘 밝게 해놓고 있습니다.

가자 마자 어머니가 계신 방에 불을 밝혔습니다.

 

일머리가  잘 안돌아 가는 제가 느릿느릿 상을 봐서 쟁반에 차려서 침대로 가져 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고등어 구이와 계란 찜을 동치미와  큰 형님이 끓여 놓은 북어국과 함께 드렸습니다.

아기자기 대화를 하면서 반찬도 수저에 놓아 드렸더니 밥을 한 그릇 다 잡수셨습니다.

저녁에도 블로그 친구, 경빈마마님에게 배운 두부 새우젓 찌개를 소고기를 넣고 끓여 드렸더니 참 맛나게들 잡수셨습니다.

아마도 시댁에서는 음식솜씨가 없다고 소문이난 제가 차린 것도 없이 시간만 많이 들여서 상을 봐드리니  부모님은 정성을 봐서 맛있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한 일도 없는데  어느새  7시가 넘었습니다. 큰동서 형님이 걱정이 되서 저녁에 내려 오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시댁에 가서 올 때까지 점심, 저녁만 해 먹고 왔는데  앉았던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순전히 제가 일을 못해서 그런 겁니다.

어느새  겨울 비가 부슬 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9시가 좀 안됐습니다.  막내가 퇴근을 해서 떡국을 끓여서 남편과 먹었다고 합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몸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막내 아들보고 감기약을 좀 사오라고 하고 누웠습니다.

 

장수사회라서 며느리도 모두 할머니 나이가 됐습니다.  저는  딱 두번 일하고 나서 큰 동서 형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살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시댁 어른들 건강이 나빠지면 형제들이 힘을 합해서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6개월은  나의 생활을 보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더 시댁에 잘해야겠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 그래요.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남편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내게 표현했습니다.

(전화를 할 때나 밖에 나오면 서로 깍듯이 존댓말을 합니다)

 

11시에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니 막내 아들이  내게 물었습니다.

" 엄마! 호떡 해줄까?"

집에 있는 호떡가루로 호떡을 만드느라고  한참 부자가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를 불렀습니다. 식탁을 가보니 호떡과 막걸리 한 잔이 있었습니다.

 

와!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사먹는 호떡보다 맛이 있었습니다. 아삭아삭한 호떡이었어요.

 

* 30살  막내 아들이 두 번 째로 만든 호떡과 막걸리, 처음 것은 하나씩 먹었습니다.  모양이 제각각이지만 맛만은 끝내주었습니다.

 

우리 집 막내 아들은 대한 민국의 평범한 30세 총각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장점이고 ,자기를 개관적으로 판단 할  줄 아는 겸손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성실하며 휴무날에도 전화 한 통이 오면 군소리 하지 않고 회사에 갑니다. 대형 마트 회사라서 주말에 근무를 많이 합니다.

 

어제 하루는  막내 아들의 말과 행동으로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팔불출인지 모르지만  저는 아들이 잘 자란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