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꼴찌를 한 적이 있단다.
두 아들을 키우며 늘 대화로 키우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둘 다 공평하게 사랑을 주려고도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심부름을 시킬 때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하게 했다.
이제 두 아들은 29,32살 로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성과 공부에 특별히 신경을 쓰며 반복학습을 시켰다.천재는 타고 나지만 수재는 노력으로 된다고 알고 있다.
공부도 습관이다. 예습과 복습을 엄마가 시작하게 하지만 습관이 되면 아이들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을 경험을 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기도했다.
아파트에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서 물어 봤다. 대부분 고학년의 자녀를 둔 엄마들이라서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내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학습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원은 어디를 보내고 있나?
하루에 공부는 몇 시간씩 하고 있나?
간식은 무엇을 주고 있나?
역시 엄마들이 달랐다. 중학교만 나온 엄마의 아들이 과학고에 입학을 했었다. 그어머니는 교대를 다니는 조카를 데리고 있으면서 아들의 공부를 지도하게 하고 있었다. 조카는 시골이 집이었다.지혜로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처음으로 OOO영어 교실을 알게 됐다.
학습에 대한 정보는 방송이나 책이나 동네엄마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
내가 책을 좋아 하니까 자녀 교육성공 사례도서를 많이 찾아서 읽었다.
문제는 공부를 하게 하는 동기유발이 문제였다.
남편은 대전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서 대학,대학원을 모두 수석졸업을 했다., 나는 공부를 잘했다 ,못했다.굴곡이 심하고 심지어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를 해서 후기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다행히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후기 고등학교에서는 가기 힘든 여대를 진학 할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고1 때만 빼고 과외를 했다. 순전히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이었다.
남편은 문과였는데 암기과목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한두번 읽으면 외우는 것이다. 남편은 많은 형제들 틈에서 자라서 학원도 한 번 가지 않았다.큰 아들이 아빠를 닮아서 암기 과목이 뛰어났다..
* 사진 출처 울학교 이티 : 나도 고등학교때는 이정도 복장이 단정한 여학생이었다. 가정 시간에 선생님이 나오라고 해서 이 학생같이 단정하게 입으라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 있는 사진관에는 내 교복 입은 사진이 오래동안 전시돼 있었다.
나는 암기과목은 90점 받으면 기적이었다. 막내는 나를 닮아서 암기과목에 약하다.수학은 재미있어서 그냥 계속 풀었기 때문에 늘 수학만 전교 일등이었다. 나는 반에서 5등 에서 10등 사이를 했다. 나를 닮은 막내도 수학,물리는 늘 최상위권이었다. 6반중에서 이과가 2반이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과에 진학했다.
고2 때 화학 원소 기호 50개를 암기해야 하는데 아무리(?) 외워도 안 외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안했다.
담임이 서울대학교 화학 교육과 출신의 36세의 결혼을 한 남자 선생님이었다.
아뿔사! 이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점수를 준다고 중간 고사에 원소 기호 50개의 이름을 쓰는 것만 냈다.
며칠 후 나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 너는 화학 점수가 이게 뭐니 8점이 뭐야? 겨우 네 개 맞었니? 담임 과목을 이게 뭐야? 아무리 수학을 잘하면 뭘 하냐? 점수 줄라고 원소 기호를 냈는데 너 때문에 반 평균만 깍였잖니?'
화학 점수가 전교 꼴찌였다.친구들이 아주 재미 있어했다.
영어도 암기 과목이 아닌가?
암기도 하기 싫고 외우기도 싫고 외워지지도 않았다.
영어 점수는 늘 평균 점수 이상을 못 받았다.
다행한 것은 고1때 낙제할 뻔할 만큼 책을 읽어서 국어 점수는 늘 최 상위권이었다.국어공부는 열심히 했다. 재미있으니까~
본고사가 있었던 70학번인 나는 국,영,수 100점씩 그리고 암기과목 생물,국사, 사회,는 필수였던 것 같고 선택은 물리,지리를 했다. 각 50점씩 9과목을 시험을 본 것으로 기억이 난다.아마도 꼴찌로 합격을 한 것 같다.
두 아들을 키우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좋아서 죽는다. 무척 웃으며
"엄마는 그게 얼마나 외우기 쉬운데.. 하하하 "
" 만약 그 때 누가 나한테 영어는 네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는 과목이 아니다. 무조건 해야 한다. 대학에 가면 교재가 원서가 많다라고 말해주었으면 좀 열심히 했을 거야. 엄마같이 되지 않으려면 영어 하고 암기과목 골고루 해야 해.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교양 필수 과목인 영어를 3학점 씩 4학기를 들었다.
그 중에 2학기를 여름에 한 번 , 겨울에 한 번 [계절학기]를 들었다.
교양영어 F를 받아서였다.
다 큰 아가씨가 멀쩡하게 차려 입고 중학교 정도의 교재를 배우는 "썸머스쿨,"윈터스쿨"을 하니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아들들은 나의 솔직한 조언에 힘 입어서 열공했다.
에미보다 다 학점이 좋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강의는 꼬박꼬박 들었지만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아서 아들들에게는 공부에 올인하는 기간이 있는 것이 멋있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가정교사를 지겹게 해서 아들들은 학기 중에 알바를 하지말라고 권유했다. [두 아이 다 부족한 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동기,선 후배를 많이 알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좋다고 권유했다. 아르바이트는 대형마트에서 하게 했다.
그 곳은 다양한 사람의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방학 때마다 마트에서 계속 알바를 했다. 3학년부터는 취업 준비 때문에 인턴과 취업 스타디를 했다.
다행히 졸업 전에 취업을 한 아이들은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마트에서 만났던 힘든 고객을 생각하고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엄마의 꼴찌 경험이 아들들에게 좋은 교육자료로 활용됐다고 생각한다.
** 저는 58세로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고 수학,과학교사를 8년 정도 했습니다.대학 4년동안 가정교사를 계속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32년차입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시행착오, 작은 성공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32,29세 아들들이 제 아빠가 결혼했던 29세를 넘겼습니다.
제 글들이 인생의 후배님들의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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