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효도 유전인자
추석에 다녀 가서 기대도 안했는데 큰 아들이 월차를 내서 내려 왔다.
서울에 출장 갔던 아빠 차를 타고 함께 온 것이다.
블로그 초청 " 2009 우주축제" 견학을 하고 돌아 오니 세 부자가 L A 갈비구이로 한잔 씩 하고 있었다.
아들들이 군대에 다녀 온 후로 아빠와 소주를 한잔 씩 하며 수 많은 대화를 한다.
특히 막내 아들은 마트의 정직원이라서 아빠와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서점을 10시 30분에 마감을 하고 11시에 마감을 하는 아들의 마트로 데리러 갔다 온다.
집에 돌아 온 11시 20분 경부터 매일 술판이 초촐하게 벌어진다.
막걸리 한 잔에 소주 한병을 부자가 나눠 마시고 한 시간씩 대화를 하고 난 후 코를 골고 잔다.
내가 아들들과 대화를 하면서 키워서 고맙다고 한 적이 있다.
남편의 아버님에 대한 효심은 존경을 넘어서 감탄을 할 지경이다.
이미 여러 번 블로그에 썼듯이 부산에 살 때부터 4년이상을 왕복 10시간을 운전하며 대전집에 계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예산 시골집에 다녔다.
15년을 사람이 살지 않던 고향집을 큰 아주버님의 지도 아래 고쳤다.
아버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을 한다.
그것은 아버님이 할아버님께 그렇게 하시던 모습이었다.
99세 까지 장수하신 할아버지는 족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셨다.
돌아 가시기전까지 밀양 박씨 규정공파 (연안공파) 26,27,28대 손의 족보 정립을 다 해 놓고 가셨다.
아버님은 절대적인 순종의 모습으로 할아버님을 존경하셨다.
퇴근하면 바로 할아버님 방에 들어 가셔서 두 시간씩 말씀을 들으셨으나 변함없이 7~8년을 그렇게 하셨다.
남편은 자식 중에 제일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걱정을 드렸다고 늘 죄송하게 생각한다.
너무 어렵게 살아서 가슴을 아프게 해드렸다고 생각한다.
아들들도 아빠의 그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를 더 존경하고 있다.
특히 큰아들은 돈많은 노인들의 모습을 자주 대하는 은행에 근무를 하고 있다.
" 우리 할아버지 같은 분이 별로 없어요"
하긴 돈많은 노인들은 많겠지만 아직 현직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 87세의 노인은 거의 없다.
아침에 큰 아들이 할아버지 모시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입에 미소를 띄었다.
갈마동에 있는 할아버지 사무실에 올라가서 모시고 내려 왔다.
그리고 유성의 오랜 전통의 복집으로 모시고 갔다.
* 까치 복지리(일인 분:19,000원) 과 복튀김(30,000원) 을 시켰다.
복을 좋아하는 남편도 까치 복은 처음 먹어본다고 했다.
아들과 나도 처음 먹어 본다. 그냥 복지리만 먹었었다.
* 복껍질 을 채로 썰어서 내온 것을 소스에 찍어 먹고 있다.
* 30,000원짜리 복 튀김: 아삭 아삭 하며 고소했다.
* 19,000원 짜리 까치 복지리: 식초를 타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소독역할도 한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 장손의 세 딸과 아버님: 추석날 찍었습니다. 87세 우리 아버님을 소개 합니다.~~
아버님은 큰 아들에게 평생 아들들에게도 말씀하지 않았던 일생의 고난의 순간들을 말씀하셨다.
남편의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우리는 늘 아버님을 의지하고 모두 아버님만 바라 보고 있었다.
일생이 고난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 기록으로 남기라는 말을 거절하셨다고 했다.
" 그 일에 관계 된 사람들이 다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하셨다.
교육청에 20년 이상 계시면서 매일 새벽 6시에 출근을 해서 충남의 18개 시,도의 중학교들의 서류를 다 살펴보셨다.
큰 아들도 제일 먼저 출근을 한다.
남편은 서점을 오픈하고 하루종일 풀로 일하고 ,.주말에는 아버님을 모시고 예산의 시골집에 들어가서 노동을 하고 왔다.
이사온지 일년이 되는데 매 주 그렇게 해왔다.
박씨 3대 를 지켜보며 나는 생각했다.
" 효도도 유전인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달 전에는 막내 아들이 할아버지가 좋아 하시는 삼계탕을 사드린다고 했다.
시댁 근처에 어머님과 남편 모두 네 명이서 식사를 하고 왔다.
남편이 아버님을 석교동으로 모셔다 드리려고 떠났다.
아들과나는 유성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아버님은 기운이 없으셔서 목욕은 사양하셨다.
언제나 그랬듯이 함께 극장에 가서 " 불꽃처럼,나비처럼"을 보고 상경했다.
아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잔 사서 내게 한잔 주었다.
대전역에 도착한 아들이 전화를 했다.
"엄마! 저 7시 50분 자유석으로 올라가요. "
모처럼 온전히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