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새 며느리와 아이스카프치노
추석 전날 아버님을 모시고 예산 시골집에 갔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는 대전 집에 계시고 ,막내 동서는 아이들이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다고 가지 않았다.
큰 형님 댁의 두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들도 모두 함께 갔다.
예산 휴게소에서 모두 모여서 커피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아버님은 늘 차에서 내리지 않으신다.
6개월 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주말마다 대전에 오는 둘째 조카 부부는 .아가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셋이 붙어 있었다.
큰형님은 의자에 앉자마자 큰 아주버님에게 며느리 커피를 사다 주라고 했다.
같은 차를 타고 내려오며 커피 마시고 싶다고 했나 보다.
“ 아버님은 센스도 없이 왜 저곳으로 가시나?”
둘째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주버님이 300원짜리 자판 커피를 사러 가시다 멈칫 하셨다.
둘째 조카가 제 아내에게 물었다.
“ 아이스카프치노?”
아마도 고개를 끄덕였나보다.
아주버님은 당신이 마실 300원짜리 커피를 사서 마셨다.
큰 조카는 세 딸들이 먹을 음료수를 사다 주었다.
갑자기 4살짜리 도연이가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빨대를 꽂으려고 했는데 아빠가 꽂아 주었다고 대성통곡을 했다.
“ 뭐여? 나는 아무도 커피 마시라고 사다주지 않는겨? 에미 봐라 아들 낳아봐야 다 소용 없는겨”
“ 호호 어머니 말씀이 가슴에 확 와 닿는데요”
“ 형님! 나는 내가 직접 사서 마시잖아요. 애비도 300원 짜리 커피만 마셔요 호호”
나는 1500원짜리 드림커피를 마셨다.다른 것은 3,000원이 넘어서 .....
". 박씨 집안 남자들은 남편감으로는 최고인데 무드가 없어요. 사람이 다 갖출 수가 있나요. 한 가지는 포기하고 살아야지""
" 작은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남편감으로는 최고예요"
도연이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결국 지 애비가 새 음료수를 사다줘서 울음을 그쳤다.
그사이 남편이 아버님에게 300원짜리 커피를 사다 드리고 자기도 마시고 있다.
남편은 2주 전부터 주말 마다 시골집에 갔다
제초기로 집안에 무성한 잡초를 다 깎었다.
안산 시누이 형님 내외 분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마당에 여러 군데에 깍아 논 풀들이 쌓여 있었다.
집에 도착 하자 마자 두 조카들은 성묘를 간다고 했다.
추석날 차례를 지내자 마자 처갓 집에 가기 위해서 그렇단다.
조카들의 처갓집은 서울에 가까이 있어서 자주 다닌다.
남편 혼자 밀짚모자를 쓰고 갈구리로 쌓아 논 풀을 귺어 내기 시작했다.
* 예산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자두만한 비타민 사과: 맛도 있고 껍질째 먹는 귀여운 사과였다.
* 돌아올 때 사려고 하니 모두 팔렸다. 대박예감!! 사과의 고장 예산의 비타민 사과!!
계란 판에 진열해 놓았다.
* 깡촌 시골집으로 들어 가는 길목 이제는 정겹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논에는 벼들이 익어가고 있다.저 산 밑에 있는 마을에 시골집이 있다.
* 시골집 앞의 골목: 아버님이 인부를 시켜서 길을 반듯하게 만들어 노셨다
* 집앞에 밭에는 들깨가 익어 가고 있고
* 남편과 아주버님, 종손녀 서연이가 남편이 뽑아 놓은 풀을 옮기고 있다.
* 남편 박씨 아저씨와 서연이, 내년에 학교에 들어 가는 서연이는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의젓하다.
* 작업중인 서연양: 무엇이든지 잘한다. 특히 글씨를 반듯하고 예쁘게 잘 쓴다.
* 소나무가 "어서 오세요" 하고 손을 벌리고 있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 아주 산골이라서 여기를봐도 산,저기를 봐도 산 ..첩첩 산중이다.
* 남편이 연속 2주를 들어 가서 제초기로 풀을 깍었다. 상당히 꼼꼼한 성격이 그대로 나온다.
* 아버님이 사당으로 지으신 15평의 큰방: 어머니는 강당이라고 부르신다.
* 저녁에 숯불 돼지고기를 먹을 때 마시려고 사다 재놓은 맥주와 사이다: 사이다를 덕산 막걸리에 섞어서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다.
* 사랑방에 장작을 때는 장손 서현이 아빠: 우리 식구 (남편, 나, 큰아들)이 여기서 잤다.
* 사랑방 밑에 가득했던 장작이 거의 다 없어졌다. 매주 가서 사랑방에 불을 때고 잤기 때문이다. 마루도 큰 아주버님이 만들었다.
큰아주버님이 같이 일을 하기 시작하자 종손녀 서연이도 함께 풀을 귺어 내기 시작했다.
성묘 같다 오던 조카들이 고속 버스로 홍성에 도착한 큰아들을 데리고 왔다.
막내아들은 추석 당일도 근무를 해서 오지 않았다.
둘째 조카 며느리가 아가를 안고 본채 마루에 앉아서 “아이스 카프치노”를 마시고 있었다.
나중에 아들에게 들으니 둘째 조카가 아이스카프치노 3잔을 들고 오길래 세 명이 마실 것인 줄 알았단다.
“ OO엄마 줄건데..”
“ 너 그렇게 살면 힘들어 진다”
큰 조카가 동생에게 말 하더라고 했다.
둘째 조카 며느리는 강남에서 죽 자랐고 사립 대학교를 나왔다.
탄탄한 중소 기업의 영업 마케팅 담당으로 외국도 자주 출장 다니는 것 같았다.
37살인 조카와 33인 조카며느리가 작년에 결혼을 해서 다정하게 살고 있다.
큰형님은 김치는 물론이고 밑반찬을 줄창 만들어서 보내 주고 있다.
그런데 고속버스휴게소에서 엄마에게 커피 한 잔 사다주는 아들도 며느리도 없었다.
형님이 늘 주시기만 해서 그런 것 같았다.
각자 아이들 챙기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사서 먹는다.
남편을 이제 알기 때문에 그에게 권유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마신다.
나는 대전으로 이사 오기 전에 너무 멀리 살고 추석에도 일을 해서 시댁에 남편이 혼자 다녔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못하는 일이라도 열심히 한다.
빚이 많으니 빨리 갚는 심정과 비슷하다.
형님은 당신이 힘든 시집 살이를 하셔서 며느리들에게는 절대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신다.
이해는 하나 습관이 되면 대접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골집에 왔으면 커피 믹스도 먹어도 봐야지 지 혼자 남편 시켜서 “아이스카프치노”를 3잔씩 사다 냉장고에 두고 마시는 조카 며느리를 보며 생각에 잠시 잠겼었다.
자기 형님에게는 한 잔을 주었나 모르겠다.
다른 부분은 내가 잘 모르나 부부 사이가 좋은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추석 전날의 달은 보름달 같이 보였다.
* 안쪽에서 본 집안 모습: 해가 져서 어둡게 나왔다.
* 마당에서 숯불로 목살 을 구워서 묵은지와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큰 집 조카 둘과 우리 집 장남이 장갑을 끼고 구웠는데 손이 다 벌렇게 부었다.( 사진 기술 부족으로 불만 나왔습니다)
* 차례 지내는 모습: 남자들만 절을 한다.
* 제사를 인정하는 천주교로 개종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고 진심으로 가족들과 화합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 집뒤의 돌담은 아버님이 인부를 불러서 쌓았다. 뒤에 보이는 산과 함께 정취가 있고 아름답다.
* 큰 아주버님이 만든 평상과 통나무 의자에서 모두 함께 식사를 한다.
* 뒷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때서 소고기 국을 끓여서 무척 맛이 있었다.
큰형님의 손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 큰형님의 손을 소개 합니다)
* 본래 외양간이 이었던 곳을 원룸( 방,싱크대, 욕실) 으로 만들었다: 밥먹는 곳 앞의 방
* 옆에서 찍은 시골집: 아버님의 구상과 형제들이 4년을 매주 가서 힘을 모아서 고친 130년 된 집이다.
* 예산 휴게소에서 울고 나에게 설교를 들은 둘째 도연이 : 단체 행동에서 돌발행동을 하면 너만 손해라고 말해 주었다. 스티카 붙이는 책을 한다발 안겨 주었더니 아주 행복하게 봍이고 놀았다.네살 짜리 아기가 논리적인 말을 해서 가끔 놀란다.
* 집밖에 ㄴ 자로 죽 심어 논 " 페리칸 샤시" 나무에 열매가 빨갛게 열렸다.
* 대전 석교동 집에서 뽑아다 심었던 서광이 엄청 많이 자랐다.
둘째 형님 가족들과 작은 집 큰 서방님 내외는 추석날 아침 8시까지 왔다.
모두 11명이 왔다.
해마다 그렇게 한다.
늦게 오는 대신에 열심히 설거지를 하다 간다.
특히 둘째 형님댁의 외며느리는 말없이 일을 참 잘한다.
가능하면 함께 어울려서 일하고 대화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둘째 조카는 아가와 좀 더 있고 싶어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갔다.
나도 큰형님 집에 큰 아들을 6개월간 맡긴 적이 있어서 그 심정은 이해는 한다.
아주버님이 아들 며느리를 고속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 주려고 성묘도 안가셨는데 ...벌초때 성묘했다고 그러시는데 남편도 함께 벌초를 같이 다녔다.
나는 형님들이 며느리에게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 현명 할 것인지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보곤 한다.
모두 떠난 후 아버님을 모시고 우리도 떠났다.
큰형님 내외분은 뒷 처리를 해놓고 손자 와 내일 오시기로 했다.
형님이 소고기국을 작은 솥에 담아서 큰양푼에 넣어서 주었다.
편찮으셔서 시골집에 못오신 어머니께 전해 주라고 하셨다.
아버님을 대전 집에 모셔다 드리고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인사를 갔다.
작은 아버님이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 중이셔서 시골 집에 못 오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집에다 차를 세워 놓고 택시를 타고 24시 찜질방에서 하는 사우나에 갔다.
한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세 남자는 남탕에 나는 여탕으로 들어 갔다.
큰아들이 내려 와서 남편은 기분이 무척 좋아 진 것 같았다.
큰 아들이 횟집에 가서 모듬회와 산 낙지를 사주었다.
아까 아빠 차에 기름도 만땅으로 넣어 주었다.
추석 보너스가 나왔다며 미리 50만원을 송금도 해주었는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네 식구가 다 모였다.
앞으로 세 달에 한번은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큰 아들이 한 달에 한번 정도 자격증 시험을 봤기 때문에 자주 집에 못 왔었다.
집에 와서 11시까지 캔 맥주를 마시며 정말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다 잤다.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하는 막내 와 8시에 기차를 타는 큰아들이 함께 나갔다.
잠이 깊이 든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둘이 택시를 타고 갔다.
둘다 아침을 먹지 않고 갔다.
남편은 10시 30분에 일어 났다.
결혼 후 처음으로 늦게 일어 난 날이다.
사업에 실패 후 벼랑 아래로 떨어 졌을 때 ,아이들을 힘들게 학교를 보낼 때, 이렇게 편안한 날이 올 줄 몰랐다.
남편을 진심으로 다시 사랑 하게 될 수 있을까 가끔씩 의문이 들었었다.
남편의 변함 없는 가족 사랑과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10여년 지켜 보면서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미움의 찌꺼기 마저 다 없어 졌다.
앞으로 두 아들 다 며느리를 봐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나는 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인복이 많은 나는 분명히 며느리 복도 있을 것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