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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세의 나 ,조금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릴레이 : 나이]

모과 2009. 9. 9. 19:02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은 45세의 나이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 가신 엄마의 죽음을 맞았을 때 였습니다..

나는 25세의 시골  중학교의 교사였습니다.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로 한 쪽 눈을 실명하고 나머지 눈의 수술 날짜를 잡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수술이 실패를 하면 맹인 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장녀인  나 ,연 년생인 여동생, 군에 입대한지 3개월이 안 된 큰 남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고 2, 18살 이었습니다..

이북에서 월남을 한 아버지의 형제는 큰 아버지 뿐이었습니다.

큰 아버지는 서울의  부자 동네에서 가축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북에서 말썽쟁이어서 고등학교도 몇 군데 옮기고 졸업을 했습니다..

큰 아버지는 모범생이고 일본 유학을 다녀 와서 직업 군인으로 근무했습니다..

총을 쏘다 고막이 터져서 제대 후 국가 유공자가 됐습니다.[과정은 자세히 모릅니다.]

그렇다고  아무 능력이 없는 동생을 밉다고 그냥두고 가축병원으로 갔습니다.

제왕 절개로 출산하는 개를 위해서....제수가 죽었는데도 말입니다.

 

나는 엄마가 다니던 교회의 교우들과 함께 교회장으로 장례를 마쳤습니다.

장지도, 관도, 수의도 내가 다 정했습니다..

7번이나 졸도를 했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탄현 기독교 공원묘지에 계신지 34년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엄마 옆으로 가신지 20년이 됐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떠나는 과정 속에서 삶과 죽음은 연장선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좋은 죽음은 준비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45세를 무척 힘들게 넘겼습니다..

엄마보다 나이든 여자가  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펠콘님에게 [나이]라는 주제로 릴레이 바톤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겠습니다.

 

1.당신은 연애 상대를 몇 살 까지 커버 가능한 가요?

 

남편과는 중매로 만났습니다.

첫 눈에 반한 남편의 작전대로  3개월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엄마가 서울 결혼식에 올라오시는길에 보고 싶다고 하신다].

세 번 째 만났을 때는 [아버지가 서울의 교육 위원회에 출장 오시는 길에 보고 싶어 한다].자연스럽게 만남을 만들었습니다.

대학 선배면서 직장 선배인 10살 위의  동료 교사의 충고가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앞으로 너는 이사람보다 나은 남자를 못 만난다, 결혼해라"

남편은 두 살 위고 ,첫 남자며, 마지막 남자입니다.

그동안  결혼 생활 32년을 보내면서 아내는 힘들 때 씩씩하게 극복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꿈결같은 행복한 세월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쟁같은 사랑을 10년을 했습니다.

사업 실패의 연속일 때 반대를 하면서 그랬고 ,남편을 좋다고 같이 사업을 하자고 따라 다니는 여성 때문에 싸웠습니다.

그리고 회복기가 9년정도 걸렸습니다.

이제 남편은 저와 가장 절친한 친구이며 동반자입니다.

남편 외에 남자 친구는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과 좋은 사이로 오래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2.당신이 생각하는 "나이 값"은 무엇인가요?

 

나이가 들 수록 부분을 보지 말고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머물어야 할 자리, 금방 비켜줘야 할 자리,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이 값"은 세월이 흐를수록  젊은 세대 뒷 쪽으로 물러나며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 가는 사회이므로 [사회 조류]와 [문화 코드]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식을 위해서 살아 온 것이 책임인데, 희생이라고 공치사를 하면 좋지가 않습니다.

자식이 힘들어 할 때 함께 도와 주는 부모가 되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좋은 죽음이란  건강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다 죽음도 순서대로 온 것이라고 순응하는 자세입니다.

 

3.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생 을 58년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한 가지 이상씩   어려운 문제를 안고 살아 가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인생은 신이 내준 숙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아서 문제가 쉬운 사람도 있겠고, 저같이 좀 힘든 문제를 받은 사람도 있겠고, 아주 재수가 없어서 풀려면  너무 힘들고 모르겠는 문제를 받은 사람도 있겠습니다.

숙제의 내용에는 [생,노 ,병,사]가 중간 중간에 섞여 있습니다.

 

문제를 풀다 보면 언젠가는 꼭 만나고 풀어야 하는 숙제들입니다.

그러니  힘이 좋을 때 만나서 그 숙제를 풀어 내면 이 후에는 그 문제가 없을 테니 일찍 만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40세 이후에 만나서 죽다가 겨우 살아 났습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려서 만나서 생각이 깊고 성실한 심성을 갖게 됐습니다.

 

4.현재 나이 때문에 불안한 가요? 혹은 좋은점이 있다면?

 

나의 인생을 자세히 아는 여동생이나 친구들은 "자기라면 못 견뎌냈을 것이다"

라고 많이 말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은 고통도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댓가가 엄청좋습니다.

경험으로 볼 때 낭떨어지에서 떨어져도 살아 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119 구조원이 어딘가에서 나타 납니다.

인생의 위험에는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 주고 가더군요.

형제일 수도 있고,친구일 수도 있고 ,빚쟁이 일 수도 있습니다.

죽기 직전인 데도 눈하나 까딱 하지 않는 냉담한 사람이 형제 중에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른 곳에서 왕창 손해를 보더군요.

즉 형제가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도와 주라는 겁니다.

" 형제끼리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 해석되고 있습니다.

 

"형제가 어려우면 받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도와 주라는말입니다"

형제들도 도와 주지 않으면 세상에 누가 도와 즙니까?

 

저는 인생의 숙제를 3/4을  비교적 잘 풀어 낸 제가 좋습니다.

이제 온전히 저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온 것도 좋습니다.

두 아들이 착하고 온순하게 자란 것도 고맙습니다.

졸업 전에 취업을 한 것도 고맙습니다.

 

 

 

5. 58세의 나, 조금씩 죽음을 준비한다.

 

오늘 나는 아주 [좋은 죽음]을 보고 왔습니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82세 [로사]할머니의 입관 미사를 보고 왔습니다.

 

 * 성당 출입구에  [장례미사 ] 안내문이 있다.

 

유리문으로 입관 과정을 지켜보면서 ,[로사] 할머니의 자녀분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습니다.

이사를  오면서 성당을 다녀야 겠다고 결심을 한 것도 언젠가는 다가 올 [죽음]에 대한 준비였습니다.

이제 나는 두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미사에 참석을 하고 매일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며, 성경을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성당에 가면 평생을 기도한 할머니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저 나이가 됐을 때 저런 모습으로 남에게 은혜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저는 오전 9시 본당에서 있을 장례 미사에 참석을 합니다.

그리고 화장장을 거쳐서 [천주교인 납골당]까지 가서 [로사]할머니께서 천국에 가시는 길을 배웅 할 겁니다.

 

미래에 제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는 숫자가 분명하나 간혹 숫자를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고 생각합니다.

 

 

 

** 이 릴레이[나이]를 블로그 이웃 [까시]님에게 바톤을 넘기겠습니다.

좋은 수필을 쓰고 있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