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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하는데 소질이 없는 엄마의 음식 솜씨

모과 2009. 9. 3. 17:03

자리가 그 자리만 남아  있어서 무심코 앉았다.

"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 솜씨가 없어"

[오잉! 우리 막내 놈이  자주  하는 소리가 아닌가! ]

 

대전행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던 서울역 대합실에서 들은 말이다.

" 나는 학교에서 급식을 안 주는 날이면 정말 짜증이 났어. 엄마가 해주는 맛 없는 밥을 먹어야 하니까"

앞에는 앳되고 예쁜 여대생 네 명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반대 편에는 남학생  둘이 앉아 있었다.

" 우리 엄마는  음식 솜씨 정말 좋아. 요리사 자격증도 몇 개가 있어. 한식, 일식, 양식까지"

그 소리를 들으니까 지 엄마에게 좀 미안한지 먼저 말한 남학생이 말했다.

" 우리 엄마는 노력은 하는데 소질이 없어.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아빠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아빠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어. 우리 집은 셀프야"

 

남의 자식이지만 꼭 우리 막내같이 보였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얼굴을 돌려서 빤히 보면 실례니까...^^

( 나의 요리 솜씨는 비교적 많이 떨어지지만 교양까지 그렇지는 않다)

 

" 아빠는 군대에 가니까 다르게 보이더라고. 우리 아빠가 군인이잖아. 군대에 가니까 아빠가 쳐다 볼 수도 없이 높은 사람이잖아.  아빠가 나이들어 보이더라구.

군대에 가니까. 아빠한테 잘해 드려야지 생각이 났어"

 

요리 솜씨좋은 엄마 아들은 말도 잘했다.

살짝 자기 집 자랑도 섞어 가면서.

 

" 그러니까 남자는 군대에 다녀 와야 한다고 하잖아"

 

생글생글 웃으며  경청 하던 여학생 중에 한 명이 대답했다.

 

" 군대 다녀 오면서 부터 아빠한테 존댓말을 했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음식 솜씨 없는 엄마의 아들이 대답했다.

참으로 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 나도 그런데 엄마에게는 반말을 써. 내가 생각을 해 봤어 . 내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아빠가 됐는데 엄마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그런데 우리 아빠도 할머니한테 반말해"

" 우리 아빠도 그래."

서로서로 모두 자기네도 그렇다고 했다.

 

" 그래도 결혼을 하면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여학생 중에 한 명이 말했다.

나이는 여학생들이 훨씬 어려 보이는데 군대까지 갔다온 남학생들 보다 정신 연령이 높아 보였다.

 

" 그래야지  결혼을 하고 아빠라고 하면 좀 그렇잖아. 그런데 엄마는 그냥 엄마야 .우리 아빠도 할머니에게 엄마라고 해"

음식솜씨 좋은 엄마의 아들이 하는 말에 음식솜씨 나쁜 엄마의 아들이 대답했다.

" 그래 엄마는 엄마야. 아빠는 아버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내가 크게 웃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함께 웃었다.

내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음식 솜씨 없는 엄마의 아들에게 말했다.

 

" 학생! 학생은 남의 집에 가면 인기가 있지요?. 나도 음식 솜씨가 없거든. 우리 아들이 친척 집에 가면 인기가 좋아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 봐요. 해서 하하하. 바로 옆자리니까 저절로 들려서 ..."

" 네. "

 하며 크고 해맑게 웃었다.

" 우 리 아들은 군대에 가서 군대 밥이 정말 맛있었다고 하던데"

" 나도 군대에서 주는 밥이 정말 맛있어요.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요"

 

우리는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군대를 갔다왔는데 어쩌면 이리 표정이 밝을 수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두 남학생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의 아들은 나이들어 보였고 어두었다.

이것은 결코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못하니까 성격은 참 좋은 엄마인가 보다.나도 그렇다.^^

 

"나는 소질도 없지만 하기도 싫어 하는 편이지. 학생 엄마는 전업 주부신가요?"

" 네. 우리 엄마는 노력은 하는데 소질이 없어요"

" 나는 음식 솜씨 없는 며느리가 와도 좋아요. 음식은 사서 먹어도 되요.성격이 착하고 남을 배려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반찬 가게 이모들이 전문가들이니까. 피곤하면 사먹을 수도 있지요.나는 전업 주부는 아니예요."

 

여학생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웃는다.

 

기차 시간이 되서 웃으며 먼저 간다고 말하고 걸어가는데 여학생 들의 말 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참 재미 있다"

 

집에 와서 며칠 후 막내 아들에게 밥을 먹으며  물었다.

" 너는 네 주변에 아는 사람중에 누가 만든 음식이 맛있었는데?'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 큰 엄마가 한 음식이 맛있고. 이모도 맛있게 하고.."

"엄마는 너무 음식 솜씨가  없지?"

 

" 엄마가 하는 것도 먹을 만한데"

 

예의로 말해주는 것이 표정에 나타났다.

당연하지 ,칭찬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막내는 쉬는 날에는 내게 밥을 차려 준다.

군대에서 취사병을 해서 잘한다.

 

막내 아들에게 서울역에서 있었던 일을 해주었다.

" 엄마! 나는 다니면서 엄마 음식솜씨 없다고 말하지 않는데. 그런데 엄마! 그 애들 말하는데 왜 그렇게 말했어?"

" 말들이 너무 웃겨서 엄마가 크게 웃어서 그렇게 됐어. 그 애들하고 나만 그자리에 앉아 있었거든.하하"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의지하고 믿는대상이니까 편해서 반말을 하는 것이다.

 

나도 큰일이다 음식을 잘 할 줄 몰라서....시댁에서 친정 엄마도 없다며 58세의 나에게 아직도  김치를 계속 담어 주고 있다. 시누이형님과  시고모님들이...큰 올케까지.

심지어 나 같이 음식 솜씨가 없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아주 잘 만드는 며느리가 온다며 배우지 말라고까지 말한다.

 

식구들이 직업 관계로 집에서 한끼 정도만 먹는 것도 큰 이유이다.

사실 장졸임 하나 만드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것도 나에겐 문제가 된다.

시간이 좀 부족하니까.

 

블로그 하는 시간에 하라고요?

 

그건 독서와 같이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 됐는데요.

시댁에서는 제가 글재주 좋다고 (시댁어른들의 의견임) 칭찬해 줍니다.

우리 집도 셀프가 많습니다.

아들만 있는데 셀프를 가르쳐야 앞으로 살아 갈 인생이 고달프지 않습니다.

어쩌면 음식솜씨 없는 엄마가 일등 시어머니감일 것 같습니다.

잔소리를 하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