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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가출한 5명의 남중생이 찾아간 곳은?

모과 2009. 8. 12. 15:16

남중 2학년  한 반에서  5명의 학생이 집단 가출을 했다.

그것도 교실에서 모여서 수근수근 의논을 해서 실행을 했다.

학급 학생들이 많이 이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

물론 반장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담임인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 사진은 영화 [몽정기]의 이미지에서 발췌했습니다. 김선아가  선생님으로 나옵니다.

 

이 사건은 내가 교단을 떠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내가 무슨 교사 자격이 있는가?"심한 회의가 들어서 반장을 불러서 물어봤다.,

" 선생님 ! 교실에서 자기들 끼리 수근수근 말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우린 장난 인줄 알았어요. 정말 집을 나갈 줄은 몰랐어요"

 

학교에서는 대단히 큰 사건이었다. 한 반에서 5명이나 집단 가출을 한 것이다.

부모들이 오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교직에 들어 와서 천직으로 알고 학생들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심한 입덧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이들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픈 것은 학생들에겐 소중한 일 년인데 성실하지 못한 담임으로 인한 피해가 많은 것이 미안했다.

 

의사의 권유로 사직서를 들고 교감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다음날 교감은 사직서를 돌려주며 극찬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 학교가 생긴 이래로 김선생같이 양심적인 교사는 처음 봅니다. 학생들을 생각해서 입덧 때문에 사표를 내다니... 심하면  앉아서 수업을 하세요. 곧 나아 질 겁니다"

 

그 때 나는 담당 과목으로 과학을 담당했었는데  부 업무로 교목실에서 목사님들을 도와드리는 종교담당 을 했었다.

교목실의 목사님이 위로를 하면서 계속 근무 할 것을 권유했다.

" 나도 대학원을 다닐 때 아내가 왕복 4시간을 통근했어요. 무척 안스러웠지만 마음 속으로는 계속 했으년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아내가 그만 두면 생활이 안되니까. 김선생도 남편이 대학원을 다니며 직장을 다니니  같은 생각일 거예요""하며 미안한 듯 웃었다.

 

남편은 대학원에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다.

나머지 시간에는 번역을 해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나의 월급이 조금 더 많았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대전의 큰형님 집에 맡기고 열심히 교사 생활에 임했다.

그리고 두 번 째 2학년 담임을 하면서 일어 난 일이다.

 

아이들은 2일 만에 스스로 돌아 왔다. 모두.

학교에 부모와 함께 등교해서 죄인같이 고개를 숙이고 죽 서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반갑고 안도심이  생겼으나 얼굴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 어디 갔다 왔니?"

모두 말이 없이 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가출을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선생님 잘못했어요. 그냥 집을 나가보고 싶었어요. 근데 막상 가보니 갈 곳이 없었어요.나가면 무척 자유롭고 좋을 것 같았는데 겁이 났어요"

그 중 한 학생이 미안 한 듯 말했다.

" 그래. 나가서 어디 가서 뭘했는데?'

" 저는 갈비집에서 숯불을 하루 종일 피우고 불 판을 닦았어요"

"저도요. 불판 닦는데  정말 힘이 들었어요"

하며 미안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 집나가면 좋겠다며?  밥은 잘 주던?"

"갈비 집이 바빠서 제 시간에는 못 먹었어요. 주방 식구들하고 함께 그냥 보통으로 먹었어요"

"잠은 어디서 잤니?"

"식당 영업이 끝나면  식당 방에서  주방 형들하고 잤어요"

'나머지 너희들은 어디에 갔었니?"

"우리들은 중국 집에서 자장면 배달을 했어요. 배달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단무지와 양파를 그릇에 넣고 .."

'자장면은 실컷 먹었겠네."

"네. 하지만 선생님! 정말 집을 나온 것을 후회했어요. 학교에 다니는 게 더 좋아요."

"나는 내가 너희들 담임을 할 자격이 없다고 깨달았다. 우리 반에서 다섯 놈이나 가출을 했고, 반장까지 모두 알고 있으면서 담임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너희들에게도 실망을 했고 나 자신에게도  실망을 했다"

'선생님 우리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러겠어요"

아이들은 직업 소개소에서 소개한 식당에서 일하면서 가출한 것이 잘못한 것인 줄 깨달았다고 했다.

 

무단 결석 3일은 퇴학이다.

아이들은 선처됐고 나는 그 해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났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교사도 7,8년을 하면 권태기가 온다고 선배 교사들이 말했다.

대전에 맡겼던 아들도 집으로 왔고 ,남편은 대학원을 졸업을 했다..

 계획에 없었던 둘째 아이를 임신을 했고 임신되는 순간부터 입덧을 하는 특이 체질이어서 사표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년 동안 우리 학급의 학생들에게 손해를 줄 수가 없다는 생각과 남의 아이들을 교육하느라고 내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아픔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남편이 부산의 대학에 전임강사로 취직이 돼서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가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주로 가출 학생을 채용하는 것을 봤다.

그러나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가출을 한 학생들이 많아서 오토바이 사고가 빈번했다.

밤늦게 까지 놀고 근무 시간에 졸음 운전을 해서였다.

배달원의 사고가 많아서 음식점을 그만 둔 사람도 여러명 보았다.

요즘은 아예 어른을 배달하는 직원으로 많이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출이 줄어 드는 좋은 사회가 되려면 어른들의 자녀 사랑,교사의 학생 사랑과 배려가  우선되야 할 것이다.

 

그 때 그 남학생들은 지금 43세쯤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