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충청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가야지...."를 되새기며 늘 떠날 생각을 하고 살아서 부산에 깊은 정이 안들었다.
그곳에서 태어난 막내는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의 부산 사나이다.
막내에게 부산은 늘 그리운 곳이며 고향이다.
큰 애가 3살에 이사를 갔는데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고 표준말을 하고 있다.
남편도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은 것이 이상 할 정도였다.
작년 11 월에 고향인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남편은 대전으로 오자마자 예산 사투리를 쓰기 시작했다.
(~한 거여. )투의 말씨인데 시댁의 모든 친척이 사용하는 사투리이기도 하다.
나는 서울에서 성장해서 대전도 역시 타향이다.
31년동안 자주 오던 시댁이 있는 도시여서 낯설지는 않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곳이다.
남편이 초,중고를 나온 도시, 남편 형제가 모두 모여 살고 있는 도시, 시부모님이 계시는 도시 ..남편은 물 만난 고기 같이 신이나서 다니는 것 같았다.
본가는 원래 예산인데 아직도 시골집에 거의 매주 모여서 간다.
6대째 내려오는 집이고 아버님의 형제분들이 태어 났고 남편의 형제들도 태어난 집이다.
4년전 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대전에 와서 아버님을 모시고 시골집에 가서 형제들이 집을 고쳤다.
가까운 홍성고모님과 아버님의 누님인 갯골고모님, 막내 고모님내외분이 모여서 옛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하셨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큰애가 전화를 한다.
일상적인 안부를 묻다가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 시골집에 가셨지. 할아버지 모시고..."
"엄마는 왜 안 가셨어요?"
"엄마는 발목이 아파서 안갔지. 자기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까 좋겠지뭐. 고모들이 해주는 음식도 맛있을 거구...추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얼마나 서로 좋겠니?"
"엄마! 본가 식구들에게 왕따 당하고 있는 것 아니야?"?
"무슨 왕따? 하하하. 그게 내가 추억 속으로 들어 갈 수는 없잖아.."
남편이 매주 시골집으로 아버님을 모시고 가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효했던 자식이 효도한다"는 속담과 같다.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모님의 걱정을 많이 드린 죄스러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 나고 싶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매주 시골집에 가면 나는 서점에 가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가지 않은 것이다.
저녁에 퇴근한 막내아들이 형한테 전화가 왔다며
"엄마! 형이 엄마가 대전 식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 같으니 잘해드리라고 하데. 내가 생각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하며 씨익 웃었다.
"그래 무슨 왕따를 당한단 말이고, 매주 시골집에서 고모님들이 김치를 해서 보내주고 있구만. 홍성 고모님이 줄창 담궈 주신다고 아까 전화로 말씀하시던데...하하하"
"엄마도 왕따 당하는 것 같이 말했다던데 .자기들끼리 모여서 논다고.."
"그건 맞는 말이지 거기에 박씨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는데?"
시댁 식구들이 왕따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대전시가 낯설어서 한동안 혼자 따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은 있었다.
어디를 가도 낯선 동네,낯선 거리였고 처음 들어 보는 동네이름, 아파트 이름이었다.
이제 점점 거리에도 익숙해지고 버스로선도 알게 되고 충청도 사투리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남편이 편안해 하는 도시 ,고향의 집, 그 모든 것이 나에게도 익숙해 지리라.
내가 늘 그렇게 하듯이 서서히 조금씩 다가 가면서 대전과 친해 지고 싶다.
대전광역시는 나에게 아주 넓은 보물찾기 놀이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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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엑스포 전시관
* 대전 지질 박물관 : 다음 지식 검색
* 대전 화폐 박물관 : 다음 검색에서 발췌
*충남 대학교 도서관 야경: 우리 막내가 공부를 하든지 안하든지 자주 가 있던 곳.
고마워요! 대전시!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