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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째 결혼 기념일에 받은 기가 막히게 좋은 선물.

모과 2009. 2. 10. 17:17

2월 9일은 31번 째 결혼 기념일이었다.

보름 전 쯤에 남편에게 [해남, 벌교, 고창]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더니,  봄에  전남대학교에서 행사를  할 때 주말에 가자고 했다.

 

어제 출근을 하며 유성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새로운 알바를 채용하느라고 바빠서 저녁 8시에 집 근처 식당에서 [동태 해물찜]으로 늦은 식사를 했다.

작년에는  케익과 샴페인을  택배로 배달을 시켰기에 작은 선물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서점이 있는  마트 안에 꽃집도 있으니  꽃 바구니라도 들고  오겠지,기대를 했다.

남편은 배가 고프다며 밥먹고 다시 서점으로 가봐야 한다며 빨리 식당에 가자고 했다.

동네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식당이 많은 곳에 갔더니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복국]이 먹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왜 기념일이면 꼭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이것은  집에 와서 나중에 깨달은 것이다.

 

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 여보! 뭐 선물 없어요?"

" 무슨 선물, 기념일 챙기는 사람들이 몇이나 된다구"

" 어떤 사람들은 꽃도 주고,케익,선물도 주고 한다던데"

" 비싼 걸 뭐하러 사. 지금 모두 살기 힘들다고 난리인데"

 

[동태해물찜]은 푸짐하고 맛이 있었다.

서점으로 다시 가봐야 한다며 소주 두 잔만 마시겠다고 한병을 시켰다.

" 서방님도 계신데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지.그냥 맘 놓고 소주 드세요"

" 오늘이 제일 장사가 안되네. 그래도 가봐야지"

안주가 너무 많아서 결국 소주 두 병을 나눠 먹었다.

내가 카드로 계산하니,현금으로 27,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주머니돈이 쌈지돈이련만.

 

남편은 집에 가서  세수하고 택시를 타고 서점에 가야겠다고 했다.

" 이제 한 시간 남았는데 그냥 집에 있지"

시동생에게 전화를 하고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는 남편에게 물어 봤다.

" 결혼 기념으로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말해봐"

"남편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하기 전에 남편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생각을 해보지"

" 하하하. 당신이 캐네디야? 그래 정말 좋은 걸 가르쳐 줬네. 내가 당신을 위해서 다 해줄 수 있지만 두 가지는 못해 준다. 그걸 맞히면 내가  식대 받지 않을께"

" 모르겠는데"

" 하나는 바지는 못다려 준다. 다리면 자꾸 두 줄이 되니까."

" 다려 달라구도 안한다"

" 또 하나는 Y-셔츠도 못 다려 준다. 정성껏 다려 놨더니, Y-셔츠 다려논 꼬라지 하고는 해서. 나머지는 다 해 줄께.당신은 뭘 약속 할거야?"

"올 해 안으로 서점을 흑자로 돌려 놓는다"

"좋아! 술,담배도 끓지"

" 그건 약속 못하지. 흑자로 되면 끓지 말라고 해도 끓어 . 스트레스 받아서 담배는 피워야 해"

"그래 힘을 합해서 흑자로 돌리자"

" 당신은 결혼 31주년을 맞이 해서 살을 확실히 뺀다. 이런 목표를 세우지"

" 그래. 살을 확실히 빼자"

 

그 때 막내가 들어 왔다. 매일 사들고 오던 맥주가 없었다.

어제 아빠와 막걸리를 먹으며 충고를 듣더니 오늘 부터 술을 안마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대학 4년동안 술만 마신 것 같고, 네 엄마는 대전으로 대학보낸 것을 잘했다고 하지만 아빠는 잘못한 것 같다. 데리고 있으면서 아빠가 잘 가르쳐야 했는데..."

저녁을 먹으며 내게 해준 말이다.

 

남편은 내성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한 자기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다.

막내가 마음이 착하고 넓어서 선,후배,동기들이 많이 찾아 오고  쉬는 날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어떤 문제인가를 설명한 것 같았다.

남편은 말이 없는 편이지만 말을 조리있게 잘 한다.

자기의 실패 경험을 말해주면서 아들을 이해시킨  것 같았다.

 

" 나는 지금 자면 내일 도시락 못 싸준다. 서울 갔다 와서 뼈가 다 쑤신다. 여보 식대 주라. 막내 점심값 주게"

" 차용증 써라. 줄께" 하며 남편이 잠들었다.

 

오늘 아침, 막내가 사다 논 땅콩쨈을 식빵에 발라서 커피를 먹고 둘 다 출근을 했다.

남편에게 7,000원을 깍아서 20,000원 받아서 막내에게 점심 값으로 10,000원을 주었다.

 

결혼 31주년의 가장 큰 선물은 [깨달음]이다.

 

남편이 무엇을 해주길 바라기 전에 남편에게 뭘 해줄까 생각하라!

 

30여년 동안 내 위주로 생활 한 것을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 30년은 남편위주로 살아 갈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남편은 복도 많지. [깨달은] 마누라를 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