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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대신 김장하러 시댁에 간 남편

모과 2008. 11. 22. 13:54

시댁은 해마다 예산에 있는 본가 시골집에서 모두 모여서 함께 단체 김장을 한다.

올해는 배추 농사를 짓지 않아서 시골집 마을의 밭에서 배추를 사서 넓은 마당에서 절이고 씻고, 속을 만들고 하루 종일 배추 김치와 총각김치, 내년에 먹을 짠지를 담근다.

올해는 오늘 시골집에 모여서 내일까지 한다.

 

부산에서 이사를 한지 일주일이 됐지만 ,집안도 다 정리 돼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나의 발목 [아킬레스건 염증]이 이사를 하면서 재발을 해서 갈 수가 없게 됐다.

남편도 광주의 [조선대학교]에서 일주일간 책을 팔고 어제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왔다.

다음주 일요일이 아버님의 생신이라서 이번 주에 그냥 김장을 하기로 했단다.

오면서 누나와 통화를 하고 내일 아버지 모시고 시골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87세의 아버님은 감독겸 양념값을 내기 위해서 가신다.

작년에 양념값만 40만원이 들었다.

어머님집, 홍성 고모님, 우리집, 막내 시동생, 막내 시누이집. ..모두 다섯 집이다.

 

어머님과 큰형님, 둘째 형님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참석을 못한다.

참고로 우리 어머님은 근 50년을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으시다가 이제는  골다공증으로 엉덩이뼈가 갈라져서 인공 뼈를 넣는 대수술을 하셨다.

 

홍성 고모님,큰시누이형님, 큰시누이 아즈버님, 내 남편, 이렇게 넷이서 김장을하게 됐다.

아버님이 시골집에서 모이는 것을 좋아하셔서 별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고향집에 가서 집안에 널려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돌아 오는 걸 좋아했다.

대화도 별로 없이 서로 고향집에 함께 있는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 보였다.

 

 

본래 남편은 우리 끼리 김장을 할때도 나와 둘이서 김장을 해서 잘한다.

사실 김장은 남자들이 도와 줄 일이 많다.

배추 씻기, 무우채썰기, 씻은 배추와 무우 옮기기,김치통에 넣은 것 옮기기, 그리고 함께 배추 속 넣기......무거운 것이 많으니까 우리 집 대표로 남편이 간 것이다.

 

시댁에서도 나보다 남편이 오는 것을 더 좋아 한다.

큰 매형과 마음이 맞아서 함께 일하며  두살 위의 누나와도 잘 통해서 웃으며 즐겁게 일들을 한다.

일도 못하면서 행동도 느린 나보다 친동생인 남편과 김장을 담그는 것을 아주 좋아 한다.

 

큰 시누이 ,아즈버님이 63세이신데 고향집에 가면 커피 당번이다.

오늘 200포기 가까운 배추를 절이고 속을 만들고 나서 사랑방에 장작불을 넉넉히 때고 아랫목부터  차례대로 죽 누워서 잘 것이다.

 

내일은 절인 배추를 다 씻고 ,총각김치와 짠지와 동치미도 담그고 ,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속을 넣고 ...중간에 돼지고기 보쌈을 해서 [덕산 막걸리]와 한잔들 할 것이다.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내가 절대 안 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지다리기와 집안의 전기기구 설치이다.

남편 바지뿐만 아니라 내 바지도 다리지 않고 모두 남편이 다린다.

내가 다리면 바지에 줄이 두개가 생겨서 잘 다리는 남편이 하고 있다.

아들들도 자기 바지 다리고 나서 엄마바지를 다려 준다.

모두 다 현역으로 군대에 다녀와서 바지를 정말 잘 다린다.

 

남자 셋에 여자 한명인데 남자들이 자기 바지 다리면서 아내와 엄마 바지를 다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들을 하고 산다.

 

전구 바꿔끼기, 집안 가구의 모든 설치는 남편이 더 잘하니까 그가 한다.

 나는 무슨일이든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원칙으로 생각한다.

 

남편이 꼼꼼해서 바느질도 나보다 더 잘한다.

내가 해주면 다시 남편이 해야 하니까,  옷이 터진다거나 하면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더니 습관이 됐다.

 

아프기도 하고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해야 하므로 고향집에 못가서 너무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큰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자네가 어떻게 오나? 치료나 잘 받게. 그냥 그럭 저럭 하는 거야. OO이 덕산에 도착했다고 전화 왔던데..." 하며 홍성 고모님을 바꿔 주었다.

"OO에미야! 너무 예뻐, 우리  조카가 자네 덕에 잘 풀리는 것 같아서 너무 예뻐." 하셨다.

대전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을 축하 해주는 것이 었다.

" 제가 발목도 아프지만 막내가 수요일에 최종 면접이라서 ,서울에 갔다 와야 해요. 친정 동생도 이사를 했고 ....다음부터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 할게요. 죄송합니다."

"아녀, 아주 예뻐. 나중에 만나게나." 하셨다.

 

지금 나는 한의원으로 병원을 바꿔서 침을 맞으러 가야 한다.

빨리 나아서 시댁 식구들과 자주 만나고 아버님과 남편을 기쁘게 해주어야 할 의무와 기대를 가진다.

좋은 시어른들이 나의 가족임은 축복중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