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의 대학 성적표를 떼러 가게 될 줄이야.
대학 4학년 9월말에 [결핵성 늑막염]이 발견 되서 [대학부속 병원]에 한 달 간 입원을 했었다.
시대는 유신 때라서 우리들의 대학 생활의 2학기 중에 3학기를 계업령으로 학교를 못다닌 것으로 기억한다.
무장 군인들이 교문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교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문하던 시절이었다.
계엄령이 풀렸으나 수업을 모두 채울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시대의 덕(?)으로 리포트를 모두 제출하는 것으로 시험을 대신하고 졸업을 했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대부분 그렇듯 학교 간판을 보고 적성에 맞지 않는 여자 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 때는 졸업을 하면 대부분이 결혼을 하던 시대였다.
결혼을 못하면 당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 두었다.
모두 현모양처가 되기위해서.
[물리학]이란 정말 어려운 학문이다.
물리를 잘하는 사람이 수학을 잘 하는 것은 너무 당연 하지만 수학을 잘한다고 물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학을 잘해서 자동으로 이과로 갔고 [모의고사]점수에 맞춰서 적성과 관계없이 대학원서를 썼다.
사설이 긴 것은 나의 대학 성적표가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말의 변명일 수도 있다.
남들은 취업이 되거나 직장에 다니는데 졸업 후 긴 투병 생활을 했던 나는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과 자기실현에 목말라 있었다.
대학 동기들은 그해 새로 생긴 [사립 교원 임용시험]에 34명중에서 10명이나 합격해서 서울 시내 의 중학교 과학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교직을 이수한 친구들이 16명이었던 것을 보면 내 친구들의 실력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내가 교직을 신청하던 해는 성적과 무관했었는데 다음해 부터 3.0(4,3만점) 이상에게만 허락 되었다.
시대가 35년정도 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신문을 샅샅이 읽는 버릇은 고1부터 시작 됐었는데 [광고란]에서 [교사 구함,경기도]라고 한줄의 기사와 전화 번호가 있었다.
호기심으로 찾아간 소도시의 중학교는 생각보다 컸다.
남중,남고, 여중,여고가 한 울타리에 있었다.
결핵약을 먹으면서도 (비활동성 결핵이라서 타인에게 감염되지 않았다) 남중의 수학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는 교사의 부족으로 과학 교사가 수학을 가르 칠 수 있었다.
성실성으로 교장 선생님의 신임을 받아서 여고 교장으로 전임하시는 교장 선생님과 함께 여고에서도 수학교사를 했었다.
수학은 그냥 재미 있어서 열심히 했고 초등학교 부터 고3까지 전교 최고 점수를 빼았기지 않았다.
대학 4년동안 가정교사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남편과 선을 봤는데 남편이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절친한 친구였다.
내 의지보다 앞서서 결혼이 진행 되었다.
결혼을 할때 남편은 대학원 3학기 중이었고 ,대학도 수석 졸업, 대학원도 전학기 장학생인 두뇌명석에 지독한 노력형인 사람이었다.
결혼전에 대전에서 장학관을 하시는 시아버님의 친구분의 사립학교에 면접을 보고 [사립 교원 임용 고시]에 합격을 하면 근무하기로 약속이 다 됐었다.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임용교시를 보려면 교육학,전공학등을 다시 공부를 해야하는 데 시간도 없고 4년간 수학교사를 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탈락해서 결혼도 전에 시댁에 큰 망신을 당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식날 가족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분이 남편의 귀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갔다.
나중에 들으니까 서울서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도의 남중의 과학교사 자리가 있는데 면접을 보러 가라는 내용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 온 후 남편과 함께 면접을 보러 갔더니 당장 내일 부터 근무하라는 것이다.
제출 서류를 적어주면서 서류는 나중에 제출을 하라고 했다.
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 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나의성적은 4.3만점에 평점 2.9 ...요즘같으면 서류전형 탈락이다.
4.5만점에 3.0은 되니까 겨우 넘었나?
나는 출근을 해야하니 남편이 나의 모교로 [성적증명서]를 떼러 가야 했다.
그 날 나는 집에 들어 가기 싫어서 저녁밥도 사먹고 목욕도 하고 밤 10시에 들어 갔다.
중매 결혼을 하고 한달이 지났고 아직 남편이 어려울 때 였다.
남편도 내가 창피해서 늦게 들어 오는지 알았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한살 차이인데 결혼 30년동안 한번도 동갑이나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이 든적이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이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내가 실력이 없는 교사로 오해 할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천직임을 그 때 느꼈고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없었고
인기투표를 하면 일등을 한 적이 많았다.
나는 학생들 한명 한명을 좋아 했고 열심히 지도안을 작성했던 괜찮은 교사 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려워서 싫어 했던 [양자학]이나 [전자공학]이나 [역학][수리물리학]들이 아주 쉬운 중학교 교육용 [교사 지도안]으로 문교부에서 만들어져서 교사들에게 지급되었다.
시부모님 혼수도 안해 가서 시댁 친척들에게 좀 이야기꺼리도 됐고,음식도 잘 못하고, .....결혼전에 시험에 떨어져서 망신, 남편에게 성적표 공개 돼서 망신.....
그래도 시어른들은 셋째는 맑고 밝다고 좋아 하신다.
남편은 신혼초에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