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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부적격자] 를 해병대가 사람 만들어 주었다.

모과 2008. 6. 5. 10:20

결론 부터 말하면 대한민국 [해병대] 정말 대단하다.

 

친정의 부모님들이 모두 일찍 돌아 가신 편이라서 막내 동생의 자식들은 큰 고모인 내가 할머니이자 할아버지 같이 따른다.

정말 큰고모 말이라면 [무조건,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 주는 착한 아이들이다.

 

막내 동생이 고2 때 어머니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 가셔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막내는 키가 184 cm(50 세) 100 kg을 육박하는 체구이지만 가끔은 막내 티가 난다.

50인데도 가끔 누나들을 부를 때 [누나야!] 하며 재미있게 해준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인데도 늘 겸손하고 가족에 대한 배려가 많다.

 

결혼을 하고 일남 일녀를 두었는데 자식에 대한 사랑는 대표적인 [자유 방임형]의 교육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해주는 교육을 했다.

올케 역시 아들에 대한 도취가 심해서

[우리 아들이 제일 잘 생겼다]

[네가 서울로 대학을 가면 서울에 있는 집의 전세를 빼서 살게 해 주겠다]

동생이 직업상 늘 늦게 들어 오니까  아들에게 주로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등을 위주로 조르면 해주는 교육을 했다.

모든 것이 아들이 우선이었다.

조카는 그걸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집에서 늘 [네가 최고야] 소리를 듣고 자랐으니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게 마련이었다.

문제는 성적이 중위권이어서 급우들이 인정을 해 주지 않는 데 있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막내 동생은 조카에게 인문계 진학을 하라고 했다.

"너 인문계 못 가면 아빠 회사에  창피해서 못 다닌다"

 

부모와 조카는 인문계만 가면 다 해결 되는 줄 믿고 간절히 인문계를 원했다.

커트라인 으로 이문계에 진학을 했다.

고교 진학후 성적이 하위권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자 시간까지 하려니 견디기가 정말 힘들다고 내게 호소를 했다.

 

그때 나는 [책 대여점]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지혁(가명)이를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조카에게 매주 고모 가게에 오라고 해서 밥도 사주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집에 갈 때는 만화를 가방에 가득 넣어서 메고 갔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야간 자율 학습]은 자율이 아니라 완전히 타율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공부가 수준이 높아지자 더 흥미를 잃었고 , 성적은 하위권인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으려니 견디기 힘들어서 딴 짓을 하게 되고 , 선생님에게 걸려서 복도에 나가서 벌을 서거나 매를 맞기 시작했다.

 

공부만 빼면 나무랄데 없는 착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도 할 줄아는 아이인데 학교에 가면 늘 죄인 같이 취급을 받았다.

지혁이는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 했다.

 

내가 일주일에 3번씩 한시간 거리의 지혁이 집에 가서 자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 오는 생활을 20개월을 했다.

친정 조카는 핏줄이라서 그런지 무조건 좋고 끌리는 뭐가 있다.

 

지혁이가 야자에서 돌아 오면 밤 10시 30분.

씻고 음료수 마시고 나서 45분 단위로 복습을 시키었다.

쉬는 시간은 15분에서 길게는 1시간도 있었다.

우리는 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의 단면들을  알게 됐고 지혁이를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자 부적격자]는 지혁이 담임이 야자를 하지 않고 가는  학생에게 주는 사유서에 써 주신 글귀이다.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최종적으로   부산, 경남에서는 유명한  [호텔조리]학과가 [자격증전형]으로 수시에 많은 학생을 뽑는 것을 알고 진로를 결정 했다.

 

야자를 하지 않고  조리 학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동생 부부도 큰 누나를 믿고 전적으로 지혁이를 맡겨  주었다.

필기는 한달 지켜서 복습을 시켜서 한번에 합격을 하고 ,실기는 6번을 떨어졌다.

요리를 한번도 해 보지 않은 남학생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일요일에 집에서 요리를 해서 핸드폰으로 찍어서 학원선생에게 보여 주라고 했다.

[재료를 굵게 썰었다,........]등의 지적을 받고 고쳐 나갔다.

7번 만에 합격을 알고 눈에 눈물이 핑그르 돌며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고 내게 말했다.

한식자격증에 이어서 일식은 한번에 땄다.

 

일학기 수시로 전문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합격을 했다.

고 3학년 2학기때 컴퓨터 자격증을 두개 땄다.

 

대학에 입학하고 일학기에 장학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후 나와의 만남이 멀어 지면서 또 방황이 시작 되었다.

학교를 가지 않기도 하고 ,...F를 두 개나 받았다고 했다.

 

갑자기 휴학을 하고 [해병대]에 입대를 하겠다고 했다.

가서 견딜수 있을 까 걱정이 되었는 데  힘든 훈련을 잘 견뎌 내고 이제 상병이 되었다.

전공대로 [조리] 특기병으로 갔는데 허리가 아파서 [행정병]으로 업무가 바꼈다.

컴퓨터 자격증(정보처리 일급기능사, 엑셀자격증) 덕을 본 것이다.

군 입대 전에 운전면허 자격증도 땄다

군에서 [중식 자격증]도 땄다.

다음에는 [양식]에 도전이라고 했다.

 

지혁이는 큰고모를 [제2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며 휴가를 나올 때 마다

엄마한테 가서 점심을 먹고 바로 나의 일터로 온다.

 

지혁이 집에 다닐 때 만화로 부터 시작해서 여학생들이 읽는 [인터넷소설]을 보게 했다.

책은 재미있는 것 부터 읽어야 흥미가 생기고 책을 읽는 습관이 생긴다.

군대에서 1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어제 상병 휴가를 나온 지혁이는 내게 전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4년제 나오면 오히려 취업에 걸림돌이 될수도 있다.

편입한다고 휴학하고 학원다녔다가 실패하면 일년이 꽝이다"

"고모! 군에서 군인 보는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보니까 모든 자격증을 따는 요점 정리와 기출문제가 다 있어요. 제대 전에 유통 관리사 자격증도 딸려구요"

 

휴가 올 때마다 3~4권의 책을 사준다.

지혁이가 고등학교 때 공부가 취미가 없어서 좀 안했다고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다.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8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대형 마트 하이퍼 매장에 취업을 원한다.

대졸은 본사에서 공채지만 전문대졸은 지역 공채이다.

 

"지혁아! 너는 해병대 입대가 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네가 한 일중에 제일 잘 한 것이 해병대 간 것이다. 해병대 인맥이 국내에서 제일 큰 것 같은 데,..김흥국 봐라. 해병대 안 나왔으면  뭘 갖고 자랑 하겠냐?"

 

" 고모! 군복입고 다니면 어떤 아저씨가 불러요 가면 용돈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고, 우리 지혁이 취직하면 고모에게 용돈 좀 주려나?"

"이미 정했어요. 엄마가 취직하면 월급 모두 엄마에게 드리기로 했어요.

그러면 엄마가 재테크해 준데요."

" 어이구 고모에게 용돈 안주려고 엄마 핑개 되네"

" 아니에요. 드릴게요.드릴게요"하며 서로 웃었다.

 

정기 휴가니까  여동생하고 다시 오겠다며 지혁이는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군대에서 예의 범절, 특히 윗 사람에 대해서 엄격히 배우니까 이제 알았어요.

우리 집에서 뭐가 잘못 된가를 알게 됐어요.웃 사람 한테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았어요."

 

올케도 무심코  아들이 좋아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사업이 힘들때 쾌히 큰 돈을 신용대출도 해주고 보증도 서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

  지금 매달 동생에게 빌린 돈도 성실히 갚고 있다.

 

나 또한 해줄 것을 찾다가 지혁이를 위해서 20개월 동안 동생 집을 다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정말 지혁이와 지영이가 좋아 졌다.

 

그 아이들이 가짐 가장 큰 장점은  긍정적이고, 착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그 아이들은 스스로 행복 할수 있는 요소를 지닐 수 있도록 동생 부부에게 교육 받은 것이다.

 

대한민국! 해병대 고맙습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