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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만들며 사는 우리 가족 1.

모과 2007. 10. 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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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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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시절

 

신혼 초 3년을 맞벌이 하면서 큰 아들을 낳았고 ,남편이 직장을 따라서 부산으로 온 지 어느 새 27년이 되었습니다.

부산의 야간 대학의 전임 강사로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서 오면서, 대학 졸업 하고 7년이나 일하던 남 중에 사직서를 냈지요.

그 후 12년을 전업 주부를 하면서 둘째 아들도 낳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얼굴에서 빛이 나고 행복이 얼굴에 듬북 묻어 있어요.

남편이 오후에 출근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큰애가 학교에 가기 전에 아파트 뒷산의 약수터를 데리고 다니며 사계절의 풀과 나무의 변화를 보여 주면서 대화를 했지요.

나뭇잎이 푸르러 지는 색깔과 잡초들의 이름을 말해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도 묻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 생각의 길을 정리 해 주게 되었습니다.

이 시절은 주로 두 아들의 양육 시절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나,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과, 최선으로 노력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겸손도 다 반복되는 습관이 만들어 준다고 믿었습니다.

아들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고 저는 아이들을 보습학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쳤습니다.

주로 책 읽기와 일기 지도에 주력을 했습니다.

예능 교육은 큰애만 본인이 원해서 유치원때부터 6년을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남편은 석사졸업장만 있으므로 모교에서 보내주는 장학금으로 (왕복 비행기값. 생활비 포함) 에딘버러로 유학이 결정이 되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갈 수 없으므로 저와 아이들은 대전 시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은 부산에 남아서 1학기를 마치고 ,떠나기로 돼 있었습니다.

 

2.잿빛의 불행의 커튼이 내려지다.

 

저는 복직을 위해 알아 보고 , 아이들은 시댁 근처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으로 전학을 했습니다.

임용고사에서 물리는 채용하지 않았고 ,아이들과 저의 생활비를 조달 할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주말마다 집에 오는 남편은 유난히 피곤해 하고 급기야는 앓아 누운 아내를 대학 부속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정밀 검사를 하게 했습니다.

[기관지 확장증]으로  오른쪽 폐의 가지 기관지 세 개 중에서 두 개가 막혀서 태어난 것입니다.

온 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누워서 앓고 있는 나를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바라 보던 남편은 말했습니다.

"부산으로 가자. 나 유학 안간다."

 

남편의 평생 소원을 접는 순간이었습니다....병든 아내때문에.

나는 남편에게 큰 빚을 진 것입니다.

 

저는 부산의 [침례 병원]흉부 외과에서 폐를 2/3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다시 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립 대학의 부조리로 여러 대학에서 학생회와 재단이 대립을 많이 할 때 였습니다.

당연히 남편은 학생들 편에 섰고 ...학교는 시위 학생들을 퇴학을 시켰습니다.

남편은 학교측과 대화로 농성을 풀고 학생들도 복학 시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당시에 있던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 되었고 갑자기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쌍으로 온다고 햇 던 가요?

늦깍기 학생으로 야간대학에 입학을 한 남편과 동갑인 여성은 학내 사정과 남편의 학구성을 모두 아는 여자였지요.

그여자는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남편을 친구같이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여자의 남편은 외항선의 선장이었고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습니다.

학교를 그만 두고 나서 남편은 매일 나가서 밤 늦게 돌아 왔습니다.

걱정이 되서 밤 늦게 나가 보면 그여자 차에서 내리는 남편을 여러 번 보게 되었습니다.

 

3. 12년 동안 단 3일 쉬었다.

 

남편은 걱정 말라면서 자기가 새로운 일을 해서 가족을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저는 신뢰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선장을 그만 두고 남편을 친 동생같이 대하며 함께 사업을 한다고 매일 그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 동안 저는 새로 생긴 변두리 아파트 촌 상가 ㅡ2층에 [책 대여점]을 개업했습니다.

1994년 책대여점이 체인점을 내며 성황 중일 때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