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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나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남편과 소주를 마시다

모과 2007. 5. 25. 02:52

남편은 전형적인 A형의 성격에 골수 충청도에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활발한 O형에다 아들만 둘에다 남학교에서 과학을 오랫동안 가르쳤고 , 태어나면서 부터 여성 우대 교육을 받은 좀 독특한 사람이란 말을 많이 듣고 살고 있다.

 

남편은 아나운서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을 정도로 목소리도 좋고 고운 말만 하는 교양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지금까지 남편이 욕을 하거나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도 한톤이 높고 크고, 솔직한 성격에 따지기를 좀 좋아한다.

늘 따지는 것은 아니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가 될때까지 묻는 다

그리고 화나면 가끔  욕도   한다. 심한 욕은 아니다.

 

어느날 남편은 중요한 것을 고백하듯이 말했다.

 

자기는 "대화"를 하지 않고 엄격하게만 자라서 부모나 형제들과 화기애애하게 웃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키우는 것이 너무 좋고 고맙다고 하였다.

남편이 말이 없었던 것은 대화의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다.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가 다 모여서 산 적이 없었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님의 전근지로 큰 형과 둘째형, 때로는 누나까지 함께 다녔고 남편은 할아버지집에서 3살 아래의 시동생과 살았다.

작은 아버님도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시골집에서 함께 살며 마을 어귀의 "수덕 초등학교"에 근무하셨고 남편의 담임이셨다.

사촌형제도 5형제이므로 늘 시골집은 사람이 많았다.

시고모님들도 다섯분이고......

 

오늘도 청주에서 일을 마치고 대전에 가서 부모님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데 아버님이 궁금하신 것 몇 마디 묻고 묵묵히 식사를 하였다.

 

오죽하면 우리 막내는 본가에 가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모두 수도승 같이 말없이 밥을 먹으니 어렵고 답답하다고  했다.

 

시골에 가면 말없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집을 고치고....

식구들 대부분이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이라서 남편과 큰 아주버님만이 일을 한후에 덕산 막걸리를 마시곤 한다.

 

나는 아버지가 큰아버지와 두 분이서 월남을 하셔서 친척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큰 집에는 사촌형제가 없으므로 우리 4형제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한 번 결혼을 하셨었다.

남과북이 막히고 다시 어머니와 결혼한 아버지는 이북에서 아들만 3명을 두었었다.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는 첫애가 딸이기를 원하셨다.

내가 태어나자 너무 기쁜 나머지 이름도 "이루어서 기쁘다"라고 이룰성, 기쁠 희로 지어 주었다.

내 아래로 여동생 그리고 남동생 둘이 있다.

나는 자라면서 늘 들은 이야기가 "네가 잘 한다" "네가 최고다"등의 이야기였다.

심지어 아버지는 발이 정말 못생긴 내게 어느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성희 정말 발이 예쁘네, "  하셨다           

 하하하 내 발이 당신의 발과 똑 같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돌아 왔는데 배가고픈데 밥이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서도 밥을 차려 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하고 자랐으니 어느곳에 가서도 성격이 밝고 맑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커서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여성들과 좀 다른 교육을 받은 것을 알았다.

그런데 서울의 학생들은 많이 나 같이 자란 것으로 알고 있다.

고3때 우리반에서 가정이 어려워서  대학에 진학을 못한 사람은 단 한명이었다.

남동생들도 마치 졸병같이 누나의 말을 잘 들었다.

그것은 지금도 그런 편이다.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르니 어떤때는 잘 어울리고 어떤때는 갈등하고 사는게 당연한 일 같다.

어느새 결혼을 하고 30년이 흘렀으니....긴 세월이었지만 서로 조화롭게 변화된 기간이기도 하다.

 

 

 

충북대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나는 남편과 학교 앞에서 식사를 하며 소주를 한잔씩 하였다.

이런 저런 말을 화기애애하게 하였다.

주로 남편이 말을 했고 내가 경청을 하니 기분이 업 되어서 한 시간 이상을 앞날과 집안일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소주 2병을 마시며 실로 오랜만에 100% 다정하게 대화를 하였다.

 

나는 원래 술을 먹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40이 많이 넘은 후에 술을 배웠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서 , 또 내가 자란 시대가 여자가 술을 먹는 것은 이해 받기 좀 어려운 70년대였기때문일 것이다.

 

화가 났을때 술을 배웠기 때문에 가끔 가족들에게  주사를  한다.

그래서 집에서만 술을 마시는 데 또 다른 이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보기가 싫어지기 때문이다.

 

남편이 당신은 다 좋은 데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후에 말을 하라고 하였다.

다 좋기는 뭘.....

 

한 동안 남편이 실패 할 일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아서 내가 화도 내고 말리기도 하고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을 때 남편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큰 소리로 화를 내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나는 남편이 나를 속이지 않으면 화를 낼 일이 없다고 했다.

자기는 과거는 다 잊었고 나를 속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속이는 일인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남편의 표정이 편안하고 여유가 생긴 것을 보고 있으니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당신하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더 큰 소망은 다시 태어 나지 않는 것이고....

 

남편 역시 나와 결혼을 하지 않는 다고 했다.

당연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를 물으니....너무 따져서 그렇다고 하였다.

 

그것도 남편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내가 볼때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십여년을 남에게 이용 당하고 ....정말 벼룩의 간을 내 먹는 사람도 만났었다.

그때마다 가족이 힘들고 하니 내가 말릴 수 밖에....

남편은 사업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집안 가족들이 교직이나 공무원이 많은 것도 성격들이 고지식하고 남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 성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보고

"당신 블러그에 집안일을 그대로 써. 보는 사람 많으니까 "

대화들이 없으니 서로의 마음을 표현을 하지 않고 서로 마음의 골만 깊어 간다.

 

내가 블러그에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쓰니 아버님은 거짓이 없고 솔직하게 써서 좋다고 하셨다.

 

다시 태어 나면 나와 결혼 하지 않겠다는 남편과 앞으로 30년은 사이 좋게 지내야 할텐데....

 

그래도 소주잔을 "브라보"부딪치며 다정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우리는 서로 어울리는 것이 더 많다.

키큰 나와 키 작은 남편, 꼼꼼한 남편과 덜렁대고 실수가 많은 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나와 감성적이고 여유로운 성격의 남편,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해에 학교를 졸업한 실제로는 1살이 많고 호적상으로는 8일 빠른 남편.

그가  친구같기는 하지만  한번도 나보다 어려보이지 않은 것은 마음이 너그럽고 편한 사람이기 때문일 게다.

오빠같이 나를 보호해 주고 의견을 존중해 주는 그 지만 나는 다시 태어 나면 남편과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시 태어날 일이 있다면 남편과 동성 친구로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천하에 없는 우정의 친구가 될 것 같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았으니 앞으로 대체적으로 따지지 말고 좀더 남편에게 잘해야 겠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사업에 실패를 할 때 좀 심하게 구박을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화로 병들어 갈때 남편은 가족에게 왕따당하는 외로움에 병들어 갔던 것 같다.

 

세월은 모든것을 덮어 주고, 가족이란  고난도 기쁨도 함께 겪는다는 진리도 함께 깨달았다.

 

다음 생은 그때 생각하고 앞으로의 세월에 충실하고 남편을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

 

그는 한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니.....그러면서 다시 태어나면 나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무조건 다시 믿어 봐야지.

 

소주 맛이 처음엔 써서 먹기 힘이 들었는데 이젠 달아졌으니 술꾼이 다됐다.

 

 

 *참고 사항

모든 글은 남편이 허가 하였고 사실에 입각하여 썼습니다.